세월호 참사와 국정원·사이버사령부의 정치개입, 그러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한국.

 

한 세월호 생존학생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나라는 미친 것 같습니다. 다소 과격한 표현이라 할지라도 이렇게라도 표현해 우리나라의 심각성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게 바로 10대부터 30대까지의 사망원인 1위가 다름 아닌 '자살'인 나라에서, 꽃다운 18세 청소년이 세월호 참사를 겪은 후 대한민국 사회에 대해 내린 결론이다. 동의하는가? 

 

한편, 여야 원내대표가 재차 합의한 세월호특별법도 유족들에 의해 거부되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원하는 건 유족들인데, 오죽하면 여야 합의안을 반대할까? 이들이 거부할 정도로 껍데기뿐인 졸속 법안은, 그 누구한테도 도움이 안 되고 그 어떤 진상규명도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에서도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발이 제기되며 추인이 유보됐고, 세월호특별법의 표류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리고 바로 어제, 국방부 조사본부는 지난 2012년 대선과 총선을 전후로 한 정치관련 댓글 작성 의혹에 대해, 국군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 요원들이 광범위하게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했다는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군형법 제94조 '정치관여'에 해당하는 위법행위를 한 것으로 확인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이날 연제욱·옥도경 전 사령관 등 21명을 형사입건했으며, 사이버사령부의 특정정당과 정치인 옹호·비판글은 7천 100여 건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검찰에 의해 정치개입 사실이 드러난 국가정보원에 이어, 국군사이버사령부 역시 대선에 개입한 사실이 마침내 확인되었다. 결국 대한민국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정식 국가조직인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가 공히 불법·부정 선거개입 행위를 한 것은 단순 의혹이 아닌 명백한 범죄로 판명되었고, 이는 곧 국가기관의 광범위한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에 의해 대의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이 훼손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너무나 조용하다. 일부 정치세력이나 어느 시민단체가 그저 의혹을 제기한 것도 아니고, 무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검찰이 사이버사령부 및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법치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나 있는 일일까? 소름 끼치도록 무덤덤한 이 사회를 보면, 확실히 대한민국이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

 

[출처: 뉴스1 - 세월호 침몰 당시 승무원 故박지영씨 분향소에 배달된 익명의 화환]

 

 

'코스프레'라는 말이 있다. 코스튬 플레이[코스튬(costume)+플레이(play)=cosplay]의 일본식 약어(코스프레)인데, 만화나 애니메이션·게임·영화 등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분장하고 자신이 그 인물이 된 것처럼 행동하며 전시나 촬영을 즐기는 것이다. 원래는 이렇게 취미생활의 일종이었으나, 요즘은 그 의미가 확장되어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자기가 마치 다른 존재인 것처럼 흉내내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이를 테면,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재래시장 방문, 대중교통 이용 같은) 정치인들의 '서민 코스프레'가 있다]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민주주의 코스프레'의 종말

 

누가 뭐라해도 대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선거'다. 선거로 뽑힌 대표자들이 권력을 가지고 국가를 운영하고, 또 법을 만든다. 법은 모든 국민이 지켜야만 하는 것이고, 이를 어기면 국가권력의 처벌을 받는다. 6월 4일 지방선거에서 박원순이 아니라 정몽준이 서울시장으로 당선됐으면 어땠을까? 그리고 7월 30일 재보궐선거 동작을에서 나경원이 아닌 노회찬이 뽑혔다면? 분명히 뭔가 달라졌을 테고, 국민은 이 대표자들의 활동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라는 막강한 국가기관들이 선거에 개입했다. 다시 한 번 분명히 말하지만, 이제 이들의 불법행위는 '의혹'이 아니라 '사실'이다. 사이버사령부는 군형법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헌법 제5조 2항 '군의 정치적 중립 준수 의무'도 위반했다. 대한민국의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대통령선거에 개입했고, 경찰까지 이 사건의 축소·은폐에 가담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정식 국가조직이 나서서 대놓고 헌법을 훼손한 것이고, 이는 나라의 근간을 파괴하는 행위다.

 

만약 다른 나라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독일군이 정치에 개입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영국 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얘기는? 아마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을 테고, 해당 선거에서 당선된 이들은 당장 사퇴했을 것이다. 여기에 가담한 독일군이나 영국 정보기관은 해체 수순을 밟으며 관련자들은 엄청난 불명예와 함께 외부 사회와 격리될 것이다. 당연히 선거는 다시 치러질 테고, 이때는 모든 국민들이 감시자로 나설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있다. 검찰이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실을 밝혀도 국정원은 멀쩡히 큰소리 치고, 국방부 조사본부가 사이버사령부의 정치개입 사실을 밝혀도 너무나 조용하다. 게다가 어처구니 없게도 국정원은 정치개입 혐의로 사법처리된 직원의 변호사 비용을 대납했다가 걸렸고, 사이버사령부 역시 정치관여 혐의로 입건된 요원들의 변호사 비용을 다른 요원들이 분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게 우리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대한민국 국가기관 종사자들의 참담한 수준이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출처: JTBC뉴스(2014/08/19) - '사이버사, 변호사비 모금…조직적 개입 의혹도']

 

대한민국은 군부 독재가 끝나고 기나긴 민주화 운동 시기를 지나서, 그래도 웬만큼은 민주주의 국가가 된 줄 알았다. 실제로 2000년대 초중반에는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 여러 가지 긍정적인 평가가 있었고, 다양한 민간 싱크탱크들의 민주주의 지표상으로도 꽤 괜찮은 순위와 점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반짝했을 뿐이고 곧이어 곤두박질 치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거의 모든 부문에 걸쳐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결국,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확고한 정착이나 근본적인 사회 변화 없이 그저 일시적인 착시효과를 누려왔던 것이다. 200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는 '정치민주화는 됐고, 이제 경제민주화가 문제다'라는 말이 많이 나왔고 또 진짜 그런 줄 착각했었는데, 몇 년 더 지나고 보니까 언감생심 경제민주화는 고사하고 정치민주화조차 아직 이루지 못했다는 게 명백해졌다. 대통령선거 하나 공정하게 치르지 못하는 나라, 국가기관의 불법 정치개입이 밝혀져도 아무런 변화 없는 나라를 어떻게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라 부를 수 있겠는가? 이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코스프레는 끝장났다!

 

세월호 학살, '선진국 코스프레'의 종말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일은 단순 '참사'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학살'이었다. "다소 과격한 표현이라 할지라도 이렇게라도 표현해 사건의 심각성을 말해야 하겠다." 충분히 구할 수 있었던 대한민국 국민 300여 명을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하고 수장시킨 것이며, 그 처참한 광경을 우리들은 거의 실시간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과연 인류 역사상 (전쟁을 제외하고) 이토록 비인간적이며 비논리적이고 가학적이며 황당한 사건이 있었던가? 세월호 트라우마는 국민 모두에게 깊은 상처로 오랫동안 남을 테고, '4.16 세월호 학살'을 사회 전체적으로 어떻게 감내하고 진상규명 하는가가 앞으로 한국의 미래에 결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출처: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 뉴욕타임즈 전면광고 'The Truth Shall Not Sink' 중 일부 갈무리]

 

대한민국은 경제규모도 세계 10위권이고 OECD 가입과 각종 국제회의 유치 · 한류 확산과 첨단 IT 인프라 구축 ·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 유치와 꽤 높은 순위 등등 여러 가지 외형적 측면에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예전에는 '한강의 기적'을 요즘에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운운하며 마치 곧 선진국이 될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난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라고 부를 만한 수준의 나라가 전혀 아니었다. 후진국도 이런 후진국이 없고, 얼마나 다 썩어 문드러졌는지 곳곳에 악취가 진동을 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세계 최장 노동시간과 최고 산업재해 발생 · 한 시간 일해서 식사 한 끼도 제대로 해결 못할 정도로 심각하게 낮은 임금과 극히 높은 비정규직 비율 · 형편 없는 사회적 신뢰 점수와 거의 바닥을 기는 행복지수 · 감히 다른 나라들이 범접할 수도 없을 정도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며 정신 없이 달려온 길은, 절대 선진국의 길이 아니었다. 게다가 복지선진국의 길이 아닌 일본·미국의 길만 편협하게 쫓아온 한국은 그 방향 자체가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결국 대한민국은 선진화된 사회가 되는 데 실패했고,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는 그대로다. 어쩌면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의 기존 사회 질서가 철저하게 실패했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일 테고, 거대 양당의 세월호특별법 합의와 유가족의 단식 · 박근혜와 교황의 대비는 단시일 내에 이런 문제적 환경이 개선되기 힘들 거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현재 한국의 모습은 우리가 바라는 선진국이 아니라는 걸 바로 이 순간 인정해야만 하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렇게 되기 힘들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선진국 코스프레를 완전히 끝낼 때가 됐다!

코스프레를 끝내고, 모든 기준을 바꿔야 한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도 아니고, 제대로 된 선진국도 아니다. 박근혜가 당선된 2012년 대선은 한마디로 총체적 불법·부정 선거였으며, 이를 추적하고 알려야 할 한국 언론은 죽었고, 정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교황에게 보내는 편지에 "우리나라는 미친 것 같습니다"라고 쓴 열 여덟 살 청소년의 말처럼, "겉만 선진국인 우리나라"를 변화시켜야 한다. 문민정부 이후 우리가 빠져있던 민주주의 코스프레도 다 때려치우고, 올림픽 이후 우리가 착각했던 선진국 코스프레도 당장 그만두자.

 

이제부터 우리는 그저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 아니라 없는 민주주의를 직접 자기 손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시민으로서 행동하고, 불완전한 선진국이 아닌 진정한 복지선진국을 향해 나아가기 위하여 스스로 활동하는 국민으로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지금까지 우리가 가졌던 모든 기준을 바꿔야만 한다. 현재 민주주의가 정착됐다고 여기며 가지고 있던 기준들을 근본부터 재검토하고, 선진국이라는 가정 하에 우리의 사회현상을 평가하는 건 재고해야 하는 것이다. 정말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나 하나쯤 빠져도 '이미 민주주의 국가니까' 또는 '이미 선진국에 들어섰으니까'라고 생각하며 안일하게 사회문제에 대처했던 걸 벗어나, 우리의 기준 자체를 다시 세워야 한다. 벌써 대한민국에서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비상식적인 일들이 너무 많이 발생했고, 또 선진국이라면 제도적 장치를 통해 미연에 방지되어야 마땅한 일들도 전혀 걸러지지 않고 고스란히 국민의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이 일어났다. 이런 사회에서는 "굳이 내가 길거리에 안 나가도 알아서 잘 해결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건, 말 그대로 '사치'다. 우리들 각자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어떤 문제도 대한민국에서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만고불변의 진리 '너 자신을 알라'는 현재의 대한민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들 각자가 대한민국의 진짜 현실 분명히 인식하고 직접 행동한다면, 민주주의가 더 훼손되는 걸 막는 동시에 선진국이 되겠다며 잘못된 방향을 향해 가는 걸음을 멈출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실상을 제대로 공유하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 모두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언제까지 미친 것 같은 나라에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대한민국이라는 코스프레 국가의 허상이 종말을 고했음을 인정하고, 무관심과 방관자적 태도를 버려야만 앞으로 우리가 이 땅에서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The Story of ART

Posted by 아서정 Arthur Jung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버크하우스 2014.08.20 10: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오늗로 보람찬 하루 되시길요. ^^

  2. 이즈 2014.08.20 12: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먹고 잘산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언제쯤이면 알 수 있을지..

  3. 코리아빠 2014.08.21 15: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눈물이 나네요..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4. bow 2014.09.16 2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미 그렇기엔 너무 늦은 건.....

  5. speckim 2014.09.18 13: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문제의 본질보다는 시끄러운 겉 모습에만 이슈가 집중되는 나라... 제가 보기엔 늦었다기 보다는 언제 시작이나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