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한 삶에서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유쾌하고 솔직하게 들을 수 있었던 시간.

 

요즘은 어딜 가나 창의력 있는 인재를 원하고, 사람들은 흔히 말하는 문화 콘텐츠 산업에 관심이 아주 많다. 그다지 창의적이지 않아 보이는 현정부조차 '창조경제'를 화두로 내세우고 있으며, 매년 이와 관련해 지원되는 국가예산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창조경제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누구도 제대로 답변을 못하듯, 그냥 이상적인 지향점과 각 창작자들의 현실 사이에는 괴리감이 무척 크다.

 

이의 대표적인 예로, 2011년 1월 지병과 생활고 끝에 숨진 시나리오작가 최고은 씨 사태를 계기로 만들어진 '예술인복지법'이 있다. 일명 '최고은법'으로 불리기도 했던 이 법은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고, 복지지원을 통해 예술인의 창작활동을 증진시키는 것'이 목적이며, 이 법에 따라 설립된 곳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다. 그렇지만 한국예술인복지재단과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시행하는 '예술인 긴급복지지원'사업의 지원대상자를 몇 개월 동안이나 아예 선정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보는 것처럼(지원대상자 선정 요건에 거의 비상식적인 수준의 건강보험료 납입고지액 기준을 적용한 게 문제였다), 현실은 무명 예술가에게 절대 호의적이지 않다.

 

결국 창작자들의 삶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으며, 어떻게든 먹고 사는 문제의 위협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처절한 '개미지옥'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참으면 윤일병, 못참으면 임병장, 이도 저도 아니면 자살"과 같은 현실적 딜레마와 예술가로서의 이상 사이에서, 때로는 괴리감의 완충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와 같은 경우에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이 바로 '선배의 멘토링'이고, 경기콘텐츠코리아랩에서 진행된 [창의세미나S]도 이런 활동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창의세미나S] 행사가 열린 '경기콘텐츠코리아랩'은 경기도와 성남시가 아이디어 기반의 창조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유치한 사업이자 문화콘텐츠 창작공간인데, 판교 테크노벨리 공공지원센터 건물에 위치해 있다. 경기도의 다른 문화콘텐츠 지원사업과 마찬가지로 '경기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며, [창의세미나S]는 창조인력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아이디어의 생성과 공유·확산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기획됐다.

 

 

이 프로그램의 주요 행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전문가 강연이고, 올해 7월 중순부터 사전프로그램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창의세미나S]의 일정이 진행됐다. 매주 목요일이 전문가 강연일인데, 8월 7일에는 제일기획 김홍탁 마스터의 강연이 있었고, 14일 저녁 7시에는 SBS 이재익 PD의 강연이 있었다. 그리고 8월 21일에는 만화가 주호민 · 28일에는 개그맨 서경석의 강연이 예정되어 있으며, 온오프 행사관리 서비스 '온오프믹스(http://onoffmix.com)를 통해서 참여신청을 할 수 있다(일반참가자 5000원, 학생참가자 무료).

 

 

그러면 지금부터 바로 어제 저녁 7시 판교 테크노벨리 공공지원센터 7층에서 진행된 SBS 이재익 PD의 강연 <크리에이티브하고 싶은 당신을 위한 내비게이션>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얘기해 보자. 우선 기본적으로 이재익이라는 '크리에이터'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부터 알아야 할 텐데, [창의세미나S] 강연 정보에서는 이재익을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

 

 

1997년 월간 〈문학사상〉 소설 부문으로 등단, 이듬해 장편소설 3,000만원 현상 고료 장편소설상 당선작인 《질주질주질주》를 출간했다. 이 작품은 이상인 감독과 남상아 이민우 김승현 주연으로 〈질주〉라는 이름의 영화로 만들어져 흥행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세기말을 살아가는 청춘들을 예리하게 포착한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두 번째 작품인 《아이린》은 카투사의 근무 경험을 토대로 주한미군의 성폭력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화제를 몰고 왔으며, 《미스터 문라이트》는 ‘새로운 감각의 감성연애소설’이라는 타이틀을 그에게 안겨주었다. 그 후 예스24에 단 1승 만을 거둔 서울대 야구부의 실화를 소재로 한《서울대 야구부의 영광》과 인터파크에《아버지의 길》을 연재하기도 했다. 특히 이 작품은 노르망디의 코리안을 소재로 해서 연재 기간 동안 700만 명의 네티즌을 감동에 젖게 만들기도 했다.
고교시절 록그룹 〈ZEST〉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는데, 하드록에서부터 헤비메탈, 로큰롤, 프로그래시브록까지 넓은 음악적인 소양은 이때부터 길러졌다. 서울대 영문학과에 입학해서도 록그룹 〈LSD〉를 결성하여 음악에 대한 열정의 끈을 놓치 않았던 그는 2001년 SBS 라디오 PD로 입사했다. 그 동안 맡은 프로그램으로는 〈소유진의 러브앤뮤직〉, 〈허수경의 가요풍경〉, 〈심혜진의 시네타운〉, 라디오 시청률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두시탈출 컬투쇼〉가 있다.
<원더풀 라디오>〈질주〉〈목포는 항구다〉 등의 영화 시나리오 등을 작업하기도 했고, 인기팟캐스트 <씨네타운 19>을 이승훈, 김훈종PD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출처: 경기콘텐츠코리아랩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참 부럽기도 한 프로필인데, 강연을 시작하면서 이재익 PD는 '크리에이티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극장에 가서 내가 만든 영화를 보는 느낌, 서점에 가서 내가 쓴 소설을 보는 느낌, 내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을 보는 쾌감!" 그러면서 그는 상업성에 대한 고민을 좋은 크리에이티브와 나쁜 크리에이티브의 구분에 적용시켰다. 한마디로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좋은 크리에이티브일 수 있으며, 돈 값을 하지 못하는 게 나쁜 크리에이티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현실적인 충고인가!

 

[출처: 경기콘텐츠코리아랩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특히 이재익 PD는 크리에이터로서의 지향점을 강조했는데, 자신의 지향점을 다음과 같이 유쾌하게 밝혔다. 자칫 심각하고 무거워질 수도 있는 주제를,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고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그의 내공이 강연 초반부터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소설가, 이재익

- 청취자와 소통하는 PD, 이재익

- 감독과 프로듀서들이 좋아하는 시나리오 작가, 이재익

- 착한 척하지 않는 팟캐스터, 이재익

 

그는 강연 참석자들에게 "'나는 이런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다'라는 지향점이 꼭 있어야 한다"고 말했으며, 어떻게 보면 너무 타협적으로 보일 수 있는 자신의 지향점도 솔직하게 공개한 것이다.

 

[출처: 경기콘텐츠코리아랩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어제 [창의세미나S] 강연에서는 창작자들의 영원한 화두 재능 VS 노력에 대한 얘기도 나왔고, 이재익 PD는 이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명쾌하게 정리했다.

"대단한 크리에이터가 되려면 재능을 타고나야 한다. 하지만 재능이 모자라더라도 다른 자질과 노력으로 상쇄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이와 함께 그는 재능과 노력 외에도 근성과 습관이 필요하며, 이 중에서 가장 필수적인 건 바로 습관이라고 말했다.

"근성만으로는 긴 세월을 버틸 수 없고, '크리에이티브 중심적 습관'이야말로 크리에이터에게 제일 중요하다!"

 

[출처: 경기콘텐츠코리아랩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이재익 PD는 문화 콘텐츠 창작에 있어 습관의 중요성을 역설했는데, 한 사람의 창작 멘토로서 "항상 안테나(관심)를 세우고 세상 모든 것이 레퍼런스라는 생각으로, 언제나 메모와 정리하기"를 추천했다. 이와 더불어 문화 콘텐츠는 결국 사람에 대한 관심이 핵심이므로, '사람에 대한 학문'인 인문학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내가 일을 사랑해야 일도 나를 사랑한다"

그는 이 말로 자신의 창작론 멘토링을 자연스럽게 '인생론'으로 이어갔다. 한 달도 채 버티지 못한 자신의 첫 직장 소니BMG(음반회사)부터 시작해서 10개월 만에 뛰쳐나온 광고대행사 오리콤의 카피라이터 생활 그리고 운 좋게 합격한 SBS PD로서의 경험을 얘기하며, 이재익의 콘텐츠 창작 강연은 결국 사람의 인생을 논하게 된 것이다. 크리에이터는 한마디로 '인생을 이야기하는 자'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휴식·여유, 시간관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말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고, 이와 관련해 친구라는 존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말도 했다. "내가 잘 나가면 친구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며 창작자들에게 있어서 '친구는 적'이라는, 다소 독특한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이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어쨌든 이재익 PD의 거침없는 입담은 강연을 무척 흥미롭게 만들었다.

이상으로 경기콘텐츠진흥원의 [창의세미나S] SBS 이재익 PD의 <크리에이티브하고 싶은 당신을 위한 내비게이션> 강연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봤다. 강연 부제처럼 크리에이터 이재익은 창작자 지망생들을 위한 안내자로서, 상업성과 지향점 · 노력과 습관 · 시간관리와 인간관계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돈도 모인다'는 그의 지론은, 크리에이티브한 삶에서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조율하는 그 나름의 핵심 키워드인 셈이다.

 

그리고 그가 솔직하고 유쾌하게 쏟아낸 말들 상당수는 알고 보면 다 '뼈가 있는 농담'일 수 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그의 일상생활(출근해서 방송국 PD로서 풀타임 근무 - 아버지로서 아이 돌보기 - 어제와 같은 강연 - 야심한 밤에 글쓰기) 자체가 크리에이터의 끊임없는 노력과 습관, '친구는 적'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강단이 모두 녹아들어 있는 삶일 테니 말이다. 결국 '인생을 이야기하는 자' 크리에이터는 창작만큼이나 일상생활도 치열하게 임해야 한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재익의 강연을 끝까지 다 듣고 나니, 그가 왜 처음에 "잘 팔리는 것이 좋은 크리에이티브일 수 있다"고 말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직업적인 창작자에게도 "내가 일을 사랑해야 일도 나를 사랑한다"는 명제는 참이며, 일을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직업적 무능함'은 어쨌든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이재익의 강연은 예술가의 생존에 있어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에 일종의 완충장치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한 게 아닌가 싶다.

 

창작자들이여, 이재익 PD처럼 일상과 예술에서 모두 약간의 뻔뻔함과 대단한 재미로 단단히 무장하고 승리하기를 바란다. (돈을 잘 벌면 크리에이터로 대접 받고, 돈을 못 벌면 무용지물로 취급되는) 이 개미지옥에서 누가 뭐라든 그대들은 절대 솔직함과 유쾌함을 잊지 말고,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길.. "극장에 가서 내가 만든 영화를 보는 느낌, 서점에 가서 내가 쓴 소설을 보는 느낌, 내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을 보는 쾌감"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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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ART

Posted by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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