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투표율과 유독 많은 무효표,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미개한 국민으로 만드는가.

 

잠정 집계된 7.30 재보궐선거 투표율은 겨우 32.9%에 그쳤다. 2000년 이후 14차례 치른 국회의원 재보선의 평균 투표율 35.3%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전체 유권자 3명 중에 단 1명만 투표에 참여해도 33.3%인데, 이보다 적은 32.9%라면 사실상 투표율의 높고 낮음을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 하면, 그 어떤 정치적·사회적 상황이 벌어지든 상관 없이 그냥 원래대로 무조건 투표를 할 사람들만 참여했다고 봐도 무방할 테니 말이다. 전쟁 와중에 피난 가서 선거를 치러도 아마 이 정도 투표율은 나오지 않을까?

 

참 뭐라 얘기하기도 힘들 만큼 너무나 낮은 투표율이 더 답답한 이유는, 7.30 재보궐선거 이전에 10번 넘게 치른 국회의원 재보선들은 '사전투표'가 없던 시절에도 35.3%의 평균 투표율을 기록했기 때문이다(2012년 공직선거법 개정). 사실 힘들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유권자들은 휴일이 아닌 재보궐 선거일에 투표장으로 향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번에 7월 25일(금)과 7월 26일(토) 이틀 동안(오전 6시~오후 6시) 권리 행사의 기회를 부여한 것인데, 이마저도 투표율 상승에 효과가 없다면 도대체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단 말인가?

 

사전투표제 시행에도 불구하고, 투표할 생각이 없는 국민들

 

물론, 7월말 여름휴가 절정기와 겹치긴 했다. 하지만 사전투표일인 금요일과 토요일 그리고 본 선거일인 7월 30일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이렇게 며칠간 시간차를 두고 3일이나 투표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참여하지 않은 이들이, 과연 모두 휴가로 인해 투표하지 못했을까? 장기여행 기간과 겹친 일부 유권자들을 제외하면, 모르긴 몰라도 순전히 휴가 때문에 투표에 참여하지 못한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휴가는 그저 핑계일 뿐이고, 애초부터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아무튼 투표율은 심각하게 낮았고, 재보선 결과 집권여당의 국회 의석수는 무려 158석이 됐다. 이는 총 300석의 국회의원 구성원 중 과반을 훨씬 넘게 차지하는 의석수이고, 액면 그대로만 보면 흔히 말하는 '단독 국회'도 가능하다(본회의에서의 법률안 의결은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통과된다). 한마디로, 7.30 재보궐선거에서 압승한 여당은 이제 '세월호 특별법'을 비롯해 그 어떤 법안에 대해서도 전혀 긴장하거나 서두를 이유가 없는 셈이다. 게다가 이번 제19대 국회의원들의 임기만료일은 2016년 5월 29일이고, 그 사이에 별다른 선거도 없다.



자, 이미 결과는 이렇게 나왔고 (현실적으로) 이걸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소위 말하는 '선거 조작'이 아닌 다음에야, 우리는 이 결과를 순순히 받아 들여야만 한다. 선거가 끝나고 지금부터 벌어질 일들이 불을 보듯 뻔하고 씁쓸하지만, 그래도 대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승복할 수밖에 없다. 다만 낮은 투표율 32.9%를 곱씹어 본 것처럼, 이번 선거 최대 승부처 중에 하나였고 유일한 서울지역 선거구였던 동작을의 유독 많은 무효표에 대해 얘기는 할 수 있다.

[7.30 재보선 15개 국회의원 선거구 가운데 서울 동작을은 1·2위간 표차가 가장 적은 초박빙 격전지였다]

 

서울 동작을의 오후 8시 투표마감 잠정 투표율은 46.8%였다. 전국 평균 32.9%보다는 많이 높지만, 그래봐야 유권자 절반 이상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수치다(6.4 지방선거 동작구 투표율이 61.7%였으니까, 박원순이 정몽준을 제치고 서울시장으로 당선됐을 때보다 투표율이 14.9%나 낮은 것이다. 당시 박원순의 동작구 득표율 57.9%). 전체 16만 7천 여명의 동작을 유권자 중 고작 7만 8천 여명이 투표했을 뿐이고, 당선자인 나경원의 득표수는 38,311표에 그쳤다. 그러니 서울 동작을의 전체 유권자 가운데 겨우 22.9% 정도만이 나경원에게 실제로 표를 준 셈이다.

 

[출처: YTN]

 

낮은 투표율과 지역주의 하에서, 소선거구제 자체의 근본적 문제

 

결국 2위 노회찬(득표수 37,382표)과의 표차는 929표에 불과하며, 득표율 차이는 1.21%다. 이걸 동작을 전체 유권자에 대입해서 따지면 0.56%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이고, 한 개의 선거구당 단 1명의 당선자를 배출하는 '소선거구제'에서 낮은 투표율이 얼마나 어이없는 사태를 초래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안 그래도 투표에 참여한 사람이 적은데 그 표들 중에서 절반 가까이가 사표(死票)가 되고, 당선자는 전체 유권자 4명 중 1명의 지지에도 못 미치는 상황인 것이다. 이걸 과연 온전한 '대표성'이라고 볼 수 있을까?

 

오죽하면 정의화 국회의장도 지난 7월 17일 제헌절에 소선거구제와 관련해 "승자 독식의 선거제도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하는지, 우리의 미래에 과연 합당한지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했겠는가? 만약 선거법을 개정해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면, 위와 같은 심각한 표심 왜곡을 피할 수 있다. 게다가 현재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소선거구제가 다른 나라에서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이유는, 지역주의 타파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7.30 재보궐선거만 해도, 새누리당 이정현이 전남 순천·곡성에서 당선된 걸 두고 '선거혁명'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그만큼 우리 정치에 지역주의가 완고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뜻이다. 소선거구제에서는 단 한 명만 당선되고, 그래서 지역편향성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아무리 새정치민주연합의 김부겸이 대구에 공을 들여도 1등 당선자는 언제나 새누리당 후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하면 한 선거구에서 복수의 당선자를 선출하니까, 2등 김부겸도 대구지역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 투표율이 낮으면 낮은 대로, 소선거구제에서 엄청나게 발생하는 사표(死票)도 중·대선거구제에서는 크게 줄일 수 있다. 대구나 경상도에서도 야당 의원이 당선될 수 있고, 광주나 전라도에서도 여당 의원이 당선될 수 있는 게 당연한 것 아닐까?



당선자와 낙선자의 표 차이 929표, 그런데 무효표가 1403표

 

중앙선관위 선거통계시스템의 개표 결과를 보면, 서울 동작을의 무효 투표수가 무려 1,403표다. 투표율이 50%도 안 되니까 당연히 투표수보다 기권수가 많고, 처음에 총 5명 후보 중 새정치민주연합 기동민과 통합진보당 유선희가 중도 사퇴해서 후보자별 득표수는 남은 3명에 대한 것만 나온다. 그런데 새누리당 후보 나경원과 정의당 후보 노회찬의 표 차이가 929표인데, 무효표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1,403표라는 것이다. 이는 노동당 김종철의 득표수 1,076표보다도 많으니, 단순히 표의 수로만 따지면 득표율 3위인 셈이다.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 문제의 열쇠는 바로 '후보 단일화'에 있다. 사전투표 시에는 현장에서 투표용지를 새로 인쇄하기 때문에 이미 사퇴한 후보의 이름이 빠진다지만, 본 투표의 기존 용지에는 별다른 표시가 없이 그저 투표소 밖에 후보 사퇴를 알리는 공고문이 붙을 뿐이다. 7.30 재보선 선거구 중 동작을과 유권자 수가 비슷한 다른 지역구와 비교해서도 유독 무효 투표수가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작게는 3배에서 크게는 10배 가까이 동작을의 무효표가 더 많다), 선거 조작이 아니라면 이 무효표들은 대부분 사퇴한 후보를 향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들이 왜 사퇴한 후보에게 표를 줬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단순 표기 실수를 제외하면) 둘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일단 한 가지 원인은 일종의 '무관심'일 텐데, 아예 투표를 하지 않은 게 아니라 투표하러 와서 사퇴한 후보를 찍었기 때문에, 이건 그저 선거일이라고 하니까 맹목적으로 투표는 하는데 뭐가 뭔지 제대로 모르는 경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말을 별로 하고 싶진 않지만, 어쨌든 '의식 수준'의 문제인 것이다.

 

[출처: 뉴스핌]

 

또 하나는 다 알면서도 남은 세 후보들에게 표를 주기는 싫고, 그렇지만 투표는 해야겠기에 의도적으로 사퇴 후보에 표기해서 무효표를 만든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사퇴 후보 두 명이 야권후보니까 이는 나경원과는 별로 상관이 없을 테고, 상대적으로 통합진보당 지지자보다는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자들의 수가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야권 단일화의 의미와 효과 대해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이고, 단일화 자체가 불필요한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논의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결국, 여당에서도 '야합'이라고 폄훼하는 야권 단일화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선거법 개정은 무척 중요한 셈이다.


다시 떠오르는 이명박 정권의 로봇물고기 사기극

 

지난 2009년 11월 27일 대통령 이명박은 '국민과의 대화' 생중계를 통해 로봇물고기를 홍보영상 형태로 소개했다. 4대강 사업의 환경파괴 논란에 대응하기 위해, 수질 조사용 로봇물고기 개발 계획을 꺼내든 것이다. 이명박의 지시에 따라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강릉 원주대, 한국기계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 4개 연구기관이 산업기술연구회로부터 혈세 57억원을 지원받아 2010년 6월부터 2013년 6월까지 로봇물고기 개발사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들 알게 됐다시피, 이건 대국민 사기극이었고 로봇물고기는 다 불량품으로 판명됐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될 줄 몰랐나? 천만에, 절대 그렇지 않다. 처음 로봇물고기 얘기가 등장했을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으며, 애초에 아무런 기술적 기반도 없는 로봇물고기 개발 계획을 가지고 4대강 사업의 환경파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식적인 국민이라면) 아무도 믿지 않았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말처럼 "보기 드물게 멍청한 열 살배기 아이라면 좀 어렵게 느낄 만한" 부분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로봇물고기 사기극의 결말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대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투표로 당선된 대통령이 하는 일을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뿐이다. 지금 국회의 상황도 비슷하다. 임기만료가 길게 남았고 그 사이에 별다른 선거가 없는데, 도대체 무슨 수로 단독 과반의 집권여당을 제어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몰라서 당하는 게 아니다. 다 알아도,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표자들이 대놓고 벌이는 일을 막을 만한 수단이 없는 것이다. 물론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압박은 할 수 있겠지만, '세월호 특별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선거가 중요하고, 미개한 국민으로 무시 당하지 않기 위해서 투표도 하는 것이다. 잘하면 다시 뽑아주고, 못하면 다른 선택을 하면 된다. 최선이 없으면,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 휴가를 몇 시간 즐기지 못해도, 앞으로 몇 년 동안 편하기 위해서 투표소로 가는 것이다. 너무 많은 권력을 가지고 독주하기 시작하면 견제가 어렵기 때문에, 선거를 통해 권력 집중을 막을 수 있다. 선거제도에 문제가 있으면 얼른 바꾸도록 만들고, 유권자 스스로 지역주의 같은 구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투표율 32.9%와 무효표 1403표, 정치 혐오와 무관심.. 단언컨대, 어처구니 없는 로봇물고기는 이런 것들을 먹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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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서정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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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즈 2014.09.16 15: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경원은 서울에서 한 자위대 행사에 참가한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이 당선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 나라가 후진국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2. speckim 2014.09.18 13: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정선거, 간첩조작, 세월호 참사 등에도 아무런 이슈를 만들지 못 하는 야당이 정치적 관심을 박멸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솔직히 현재 대한민국에서 국민들이 지지 정당을 갖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xx xxx하고 xx 사이에 고르는 선거라서 항상 xx를 뽑아주기는 하는데, 그러기 조차 자괴감이 느껴져요.

  3. ☜피터팬☞ 2015.01.07 10: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이 지난 이슈지만 트랙백을 남겨봅니다. ㅋ

    사실 이 선거와 관련된 제 글은 미래에 대해선 의미가 크지 않은 글이었는데, 아서정님의 글은 그렇지 않네요.
    이 글의 관점에서는 730 재보선은 여전히 곱씹어봐야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군요.

    아.. 이런 글을 써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