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유지에만 혈안이 된 패거리와 고분고분한 모범생의 조합, 한국사회의 축소판.

 

대한민국 축구계의 최고 스타이자 2002년 월드컵이 낳은 영웅 홍명보가, 끝내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났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축구계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한국사람들에게 최상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고, '홍명보 리더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굉장한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그는 10년 넘게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대표팀 주전이었고, 그후 10여 년 동안 지도자로서도 승승장구했다. 본인도 사퇴 기자회견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90년 이후 무려 24년간 홍명보는 한국 축구의 대표 얼굴이었으며, 명실상부한 차세대 리더였다.

 

하지만 90년 이후 12년 만인 2002년에 정점을 찍은 그의 선수생활과 2002년 이후 12년 만인 2014년에 정점을 찍은 그의 지도자생활은, 결국 브라질 월드컵을 거치며 한순간에 다 무너지고 말았다. '90년 월드컵-2002년 월드컵-2014년 월드컵'으로 이어지는 24년의 황금기는 완전히 종말을 고했고, 과연 홍명보가 언제쯤 재기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 됐다. 이 기간 동안 홍명보의 삶이 곧 한국 축구의 역사이고, 지금 홍명보의 처지는 곧 한국 축구의 현실이다. 그리고 넓게 보면, 그저 축구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자체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출처: 경향신문]

 

한국사회에서 환영 받는 '홍명보類' 인재

 

우리는 사물을 종류에 따라 가르는 걸 '분류(分類)'라고 하며, '서로 구별되는 특성에 따라 나눈 갈래'를 '부류(部類)'라고 말다. 이에 빗대서 홍명보'류(類)' 인재를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한데,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이런 인재가 언제나 환영을 받는 것 같다. 혈연·지연·학연이 각 개인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에서, 출신성분이 우수한 데다 말도 잘 듣는 모범생은 권력집단에게 참 부담 없는 선택지 아닌가? 이를 테면, 서울에서 태어나 축구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고려대에서 학사·석사·박사를 모두 끝냈으며 성정이 고분고분한 홍명보처럼 말이다.

 

반면 고졸에 그친 김호나 지방 고등학교를 체육 특기생이 아닌 일반 입학시험 합격으로 진학한 조광래, 국내 리그에 승부조작이 있었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 차범근 같은 사람들을 선택하는 건, 연줄에 의한 패거리문화가 팽배한 한국에서는 일종의 '모험'으로 간주된다. 다들 알지 않는가? 축구계뿐만 아니라 한국의 다른 많은 스포츠 협회가 이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걸. 쇼트트랙의 안현수가 왜 '빅토르 안'이 됐으며, 배구의 김연경이 해외에 진출하는 게 왜 그토록 힘들었는가? 이 사회에서 운동으로 성공하려면, 출신성분(연줄)에 결격사유가 없어야 하고 어떤 부조리가 있더라도 언제나 선배들의 말을 잘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출처: OSEN, 에스티엔]

 

그런데, 비단 스포츠계만 그런 게 아니다.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이런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음대 임용비리와 미대 입시부정 등이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에서는 예술을 하는 데에도 권력을 가진 패거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또 이과대 교수에 의한 대학원생이나 조교 착취는 어떤가? 교수의 말에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아예 이 바닥에서 축출되기 십상이다. 학교를 졸업해 사회에 나가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내부고발자라도 되는 날이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에서는 그저 윗사람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 환영 받고, 어떤 식으로든 이의를 제기하면 따돌림 당하기 일쑤다.

 

이런 사회의 토양 위에서 홍명보라는 사람이 승승장구했다. 스포츠계 일반의 병폐와 더불어 '현대家' 하고도 얽히고설킨 대한축구협회의 복잡다단한 문제들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닌데, 이런 축협의 지지 속에서 지도자로서의 경험도 부족한 홍명보가 세계적인 명장들이 즐비한 월드컵 무대를 밟은 것이다. 애초에 홍명보가 출신성분이 우수하고 말 잘 듣는 모범생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이른 시기에 발탁하지도 않았겠지만, 어쨌든 홍명보 스스로도 자기가 이제까지 이어왔던 삶의 방식을 거스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감독으로 있으면서는 권력집단과 전혀 충돌하지 않았고, 사퇴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축구협회의 문제에 대해 단 한마디도 발설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다른 의미에서) 축협의 홍명보 선택은 탁월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한국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축구협회式' 패거리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 있는 일정한 모양이나 형식'을 '양식(樣式)'이라고 하며, '국가나 사회에 의해 공적으로 인정된 방식'을 '공식(公式)'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빗대어 축구협회'식(式)' 패거리를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하고,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있는 '축구협회식 패거리'들의 문화(?)에 대해 논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저 '다른' 걸 아예 '틀린' 것이라고 말하는 게 일상적인 나라에서, 그리고 '집단주의'가 어느 정도 당연한 걸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는, 어떻게든 힘 있는 패거리 안으로 들어가는 게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소외 당하지 않고, 그래야만 객관적인 지표 이외의 측면에서 비공식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남이가' 문화인 것이다.

 

연줄에 따라 선수 및 감독 선발뿐 아니라 개인상 수상까지 좌지우지한다는 한국 축구. 그 중심에 대한축구협회가 있고, 오랫동안 축협의 병폐가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아마도 대표적인 사건으로 차범근과 조광래의 경질을 들 수 있을 듯싶은데, 조광래의 경우는 시한부 사령탑인 최강희를 거쳐 홍명보 대표팀에게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대한축구협회(현대家)와 거의 쌍벽을 이루는 엉망진창 복마전 '대한빙상연맹(삼성家)'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언젠가는 한국 축구 선수나 감독이 안현수처럼 경쟁국의 대표가 되어 우리를 추월해 나갈지도 모르겠다.

[현재 축구협회 회장은 현대산업개발 회장인 정몽규(정몽준의 사촌)이고, 빙상연맹 회장은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인 김재열(이건희의 사위)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는 비단 축구협회나 빙상연맹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전문성과 낙하산의 역설'에 대해서도 한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흔히 낙하산 인사를 비판하는 주된 이유는 '전문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전문성이란 건 주로 '연줄에 기반한' 전문성일 때가 많다. 다시 말해, 특정 패거리(학교, 학과, 인물, 지역 등등)와 연계된 전문성인 셈이다. 축구협회 전임 회장인 조중연(축구선수 출신) 때의 전문성이 바로 이런 경우다. 원래 축구인들이긴 하지만, 행정 능력이 거의 없는 전문가들이 축협을 장악한 것이다. 그러니 런던올림픽 한일전 후 박종우 선수의 '독도 세리머니' 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한축구협회는 정말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대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 현직 회장인 정몽규(기업인 출신)는 '인적쇄신'을 한다며 축구인이 아닌 사람들 상당수를 낙하산 비슷하게 축협에 많이 끌어들였다고 한다. 당연히 축구 자체에 대한 전문성은 떨어지기 마련이고, 아마 이것도 이번 월드컵 비극의 큰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정리하자면, 전문성은 해당 직무의 능력을 봐야 하는데 단지 연줄에 기반한 전문성을 보는 게 잘못이고, 낙하산은 전문성 없는 인적쇄신이 되는 게 문제다. 전문성과 낙하산의 역설은 정말 심각한 사안이고, 이와 같은 패러독스가 대한민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문성을 믿고 맡겨놓으면 자기들끼리 같은 패거리 내에서 다 해먹고, 인적쇄신을 한다며 새로운 인물들을 데려오면 전문성이 부족한 낙하산이 된다. 축협의 예에서 보듯이, 우리는 이런 역설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이다. 기업인이 회장인 다수의 스포츠협회들이 그렇고, 수많은 공기업과 산하기관들도 다 마찬가지다. 축구협회식 패거리 문화가 한국 사회를 망치고 있다.

[일종의 '축피아'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모피아 · 국피아 · 산피아 · 해피아 등도 모두 이런 부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출처: 연합뉴스TV(2014/04/26)]

 

불행하게도, 고분고분한 모범생과 패거리 문화로는 절대 바꿀 수 없다

 

이제까지 홍명보가 살아온 방식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적지만, 그래도 만약 홍명보가 히딩크에게 배운대로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축협의 뜻과는 별로 상관없이 파격적으로 선수를 기용하고, 자기만의 스타일로 선수들을 훈련시키며, 한국의 상명하복 문화와 연줄을 무시했다면 말이다. 그랬으면 축구협회와는 좀 충돌이 있었을지 몰라도, 월드컵 성적이 이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테고 이토록 불명예스럽게 여론에 밀려 퇴출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히딩크는 외국인 감독이어서 이게 가능했던 측면이 있는데, 태생적으로 한국의 연줄과 상명하복 문화에서 명성을 쌓고 커온 홍명보는 사실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안타깝지만, 현 상태에서는 홍명보처럼 고분고분한 모범생으론 한국축구를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결국 외국인 감독을 새로 영입하거나 소위 말하는 (자기 소신을 밀어붙이며 축협에 맞설 수 있는) 비주류 또는 야인을 기용해야 하는데, 축구협회에서 과연 국내 야인이나 비주류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제대로 지원을 해줄지 의문이다. 쉬운 예로 차범근 같은 유일무이한 대한민국 축구 최고의 수퍼스타도 월드컵 기간 중에 경질될 정도인데, 도대체 어느 누가 버틸 수 있을까? 이건 단순 능력과는 좀 다른 문제다. 우리가 홍명보 대표팀을 보며 분통을 터뜨린 게 그저 성적이 나빠서만은 아니지 않은가?

이 사회 어디에서나 보이는 무원칙과 특혜, 기회의 불평등과 자기사람 챙기기 등이 팀웍을 해치는 게 고스란히 드러나니까 더 화가 난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렇게 좋은 이미지로 최상의 명성을 구가하던 차세대 리더 홍명보가, 끝내 한국축구의 악습에 저항하기보다는 그냥 축피아에 순응했기 때문에 그게 너무나 답답하고 실망스러웠다. (마치 세월호 참사의 '해피아'처럼) 월드컵에서 축피아의 기운을 느껴야 한다는 건 무척 불쾌했고, 홍명보마저 그 일부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것도 상당히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다 이런 식인가..

 

도대체, (한국사회 곳곳에서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축구협회式 패거리 밑에서 홍명보類 인재들이 뭘 할 수 있을까? 수많은 축구팬들이 홍명보 대표팀의 실패를 예견했고, 이번 월드컵의 비극은 눈에 뻔히 보이는 결말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풍토 속에서 홍명보는 끝까지 축피아가 원하는 대로 움직였고(심지어 사퇴 기자회견에서도), 아마 축협은 이쯤에서 대충 봉합하고 넘어가려 할 것이다. 그래서 한국축구는 이번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고분고분히 말 잘 들은 아이들이 영영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 '학살' 이후 한국사회의 권력집단도 이와 비슷하고, 어쩌면 제2의 세월호 방지도 이미 물 건너간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대한축구협회가 비주류나 야인에게 사령탑을 넘기고 적극 지원할 게 아니라면 차라리 외국인 감독이 더 나을 수도 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제2의 '히딩크-허정무-홍명보'가 또다시 반복되지 않는다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단순히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는 게 잘못이 아니라, 진짜 비극은 바로 이거다. 홍명보 하나 잃었으면 됐지, 다음엔 또 누구를 제물로 삼을 건가?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없으면,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그저 똑같이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축구협회式 패거리를 혁파하지 않고 홍명보類 인재만 키워내면, 대한민국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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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ART

Posted by 아서정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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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7.15 16: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왕소군 2014.07.18 06: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판하시는 의도와 방향은 알겠지만
    패거리가 무조건 나쁘다는 식의 논조에는 동의할 수 없네요.

    패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무능이 문제지여. 잘되면 팀웍이 되지만 못하면 패거리가 되는거죠.
    홍명보가 문제가 아니라 결과가 문제였겠지여. 결과가 좋았다면 절대 이런 논조가 나올지 못했을테니까여.

    홍명보류 인재라며 홍명보의 인간됨을 폄하하는 것은 아주 못돼먹은 글쓰기입니다.
    그가 감독직 이전에 한국축구의 레전드였다는 사실과 그의 인간됨과 리더쉽은 분명히
    칭찬받을 만한 것이었는데 이번 결과로 그것을 모두 부정하는 모습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비난하는 사람들이 같는 착각 중 하나가 내가 해도 너보다는 잘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비난에서 겸손한 생각으로 글을 썼으면 좋겠군여.
    아직도 차범근이 98년 당한 수모를, 그래도 욕먹을만했다고 자기를 두둔하는 사람들이 다시 홍명보를
    매장하고 있다는 생각에 화가 납니다.

    우리가 차범근과 홍명보를 매장해서 얻어지는 게 있던가여?
    그들을 지켜내고 문제를 정확히 짚어내는 시각이 아쉽습니다.


    • 아서정 Arthur Jung 2014.07.18 07: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뇨. 패거리는 나쁩니다.
      패거리도 문제고, 무능도 문제죠.
      홍명보도 문제고, 결과도 문제입니다.
      오히려 저는 과정상에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홍명보 대표팀이,
      만에 하나 좋은 결과를 거둬서 이렇게 필요한 비판이 주목을 받지 못하고 묻힐까봐 우려스러웠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분들이 과정상의 문제를 계속 지적해 왔거든요.

      홍명보가 과거에 어찌했든 현재 명백히 잘못한 건 비판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이론의 여지가 있는 건 차치하고) 설사 그가 감독직 이전에 인간됨과 리더십이 칭찬 받을 만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지금 잘못된 건 그대로 잘못된 겁니다.
      레전드, 인간됨, 리더십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나열하며 현재의 잘못된 상황을 호도하는 것은 아주 못돼먹은 글쓰기입니다.

      제 글 어디에도 '내가 너보다 잘한다'는 식의 얘기는 없으며,
      본문을 보면 알겠지만 저는 김호, 조광래, 차범근 이 세 사람과 홍명보는 좀 달리 보고 있습니다.
      남의 블로그에 글을 남길 때에는 내용을 좀 제대로 읽어보고, 스스로 오만한 지적을 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며 댓글을 썼으면 좋겠군요.

      그리고 마지막에 저도 이렇게 썼습니다.
      "홍명보 하나 잃었으면 됐지, 다음엔 또 누구를 제물로 삼을 건가?"
      차범근과 홍명보를 무조건 지킨다고 해서 능사가 아닙니다.
      좀 더 냉정하게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내는 게 중요합니다.

  3. 왕소군 2014.07.18 08: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단 제 모난 말들에 대해서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제가 선생님 글을 읽고 비난조라고 느낀 것은 홍명보와 축피아를 동일시하는 것에서 느낀 것입니다.
    저는 냉정하게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내기엔 축구계를 잘 몰라 그 깜냥이 안되지만,
    홍명보에 비난이 집중되는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해선, 선생님과 같이 글쓰기로 참여하는 사람으로서,
    할 말이 많습니다.

    지금은 시들었지만 기성 언론 뿐 아니라 포털, 블로그에서도 홍명보에 대한 비판이 도를 넘어섰지
    않았습니까? 그가 내놓은 월드컵 결과에 대한 비판이 홍명보의 인간됨으로 넘어가버렸거든요.
    땅문제로 그가 준비과정을 소홀히 했다거나, 뒤에 선수들을 위해 회식을 연 것을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무책임한 리더로 담아냈던게 그 증거지여.

    과거 차범근감독경질을 돌아보면 당시 언론이 차범근 경질론을 미리 부추겼다 평할 수 있습니다.
    축구결과에 일어나는 팬들의 비난은 늘있는 것임에도 언론이 거기에 편승하여 균형을 잃고
    감독 책임론만 부각시켰기 때문에 축협이 경질을 택했고 그 덕에 축협이 받아야 할 비난과 문책을
    비켜갔던 것이져.

    이번 홍명보에 대한 비난도 똑같습니다. 박주영 감싸기와 '엔트으리'에서 시작된 홍명보 리더쉽에 대한 논란은 여러 시각들이 존재했음에도 홍명보 개인의 문제로 집중되었습니다.
    예로 스포츠언론과 박주영간의 불편한 관계는 인터뷰거절 문제로 보는 것처럼 이미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니 박주영에 대한 불만이 홍명보로 이어졌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죠. 언론은 자신들의 실수를 감추고 기사를 쓰니까여.

    개인의 판단 책임으로 돌리는 것보다 주변 상황과 축협의 입김 등 다각화 된 면에서 그런 결정을 하게된 여러 배경들을 짚을 수 있었는데 오로지 그것을 의리라는 표현으로 매도한 것은 언론이 균형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차범근 때과 닮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선생님 글을 읽고 전체적으로 균형을 잡으시려고 했지만 결국 비난조의 다른 여론과 편승했다고 느껴서 감정적 언사를 드러내어 그 노력을 폄하한 꼴이 된 점은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한 사람의 축구팬으로서 축구계의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 다른 사건으로 인해 매도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뭐 지금 제 꼴이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흘기는 우스운 꼴이 되버렸지만, 변명하자면 그래도 균형잡으려고 글을 쓰신 것을 느꼈기에 말이 좀 통할거같아 괜한 댓글을 달았나봅니다.

    • 아서정 Arthur Jung 2014.07.18 09: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단, 스포츠언론의 문제와 일부 축구팬의 문제는 좀 나눠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차범근 때의 상황과 홍명보의 상황은 비슷한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많습니다.
      여러 층위의 문제들을 너무 한데 묶어서만 바라보면, 논점이 흐려지고 여기서 해야 할 말과 저기서 해야 될 말을 구분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이 글에서 그저 국가대표팀이나 축구스타 얘기만 하려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팽배한 패거리문화와 말 잘 듣는 모범생의 관계에 대해 논해보고 싶었습니다.

  4. 왕소군 2014.07.18 0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게 말씀을 해주시니까 이제야 한결 글이 말하고자 했던 바가 쉽게 공감됩니다.
    지적하신대로 제가 글을 잘 읽지 못했네여. ;;

  5. Jacob 2017.09.14 22: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왕소군씨 의견에 반대입니다
    씨는 글쓴이의 사려깊은 지적을 애써 외면합니다
    작금의 축협 비리가 패거리 축협을 고발합니다

  6. Jacob 2017.09.14 2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리와 아울러 축협의 무능과 패거리 기득권을 깨부시기위해 히딩크씨를 모셔와야합니다 히딩크씨야말로 우리 손으로 못하는 고질적 적폐를 청산시킬만한 비중과 파워와 국민적 신임이 있는 분입니다 한국축구가 살 길입니다 그리고 차범근 박지성 이영표로 물갈이 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