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민주적 통합 과정과 궁색한 명분의 결과, 새정치민주연합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

 

지난 3월 초,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 안철수 창당준비위 중앙운영위원장이 공동 신당을 창당하기로 합의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 시간이 임박해서야 당 대표로부터 단체 메시지를 받았다고 전해지며, 새정치연합은 윤여준이나 김성식 같은 공동위원장조차 "기자들하고 같이 알았다"고 말할 정도로 양당 관계자들이 모두 놀란 무척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3월 26일에 '새정치민주연합' 중앙당 창당대회가 열렸고, 한국 정치는 거대 양당 체제가 더욱 더 공고해졌다.

 

하지만 6월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딱 달 남은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은 지지율 자체도 하락세이고 내부적인 갈등도 적지 않다. 공식적으로 창당한 지 불과 열흘밖에 안 됐는데, 벌써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왜 통합 정당이 탄생했는데 새로운 바람도 일어나지 않고,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사분오열하고 있을까? 그런데 사실, 이런 불안한 상황은 통합 당시부터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궁색한 명분을 가지고 비민주적인 과정을 거쳐 통합한 결과가 바로 지금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바로 이 점을 집중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사진자료: 오마이뉴스]

 

'민주주의는 과정이다'.. 통합 과정의 비민주성

 

다들 알다시피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의 통합·창당 선언은 단 이틀 만에 김한길과 안철수의 전격 합의로 성사된 것인데, 이 과정에서 지지자들의 양해는 고사하고 같은 배를 탄 동료 정치인들에게도 사전에 별다른 안내가 없었다. 이 말인즉슨, 통합 과정 자체에 아무런 토론이나 동의 절차가 없었다는 뜻이다. 결국 새정치연합의 공동위원장이었던 김성식과 윤여준은 (창당 초기에는 일시적으로라도 함께할 법한데) 아예 새정치민주연합에 합류하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분석보다, 당사자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는 게 가장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새정치민주연합도 정식 출범했고 과도한 관심도 좀 사그라지고 나니, 윤여준 전 새정치추진위원회 의장이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기자: (민주당과) 통합 결정 과정이 굉장히 전격적이지 않았습니까. 사전에 잘 알고 계셨던 건 아니죠?

윤여준: 잘 알고 있었던게 아니라, 전혀 몰랐죠. 공동위원장들이 아마 다 그랬을 겁니다.

 

기자: 발표 후에는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윤여준: 우선은 그 직전까지 독자 정당의 창당을 강력히 주장했고 민주당을, 바로 전날까지, 낡은 정치세력으로 규정했었잖아요. 그런 세력하고 하룻밤 사이에 힘을 합쳐 당을 만들기로 했다는 사실이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둘째는 새정치연합이라는 연합 창준위라는 기구가 이게 친목단체가 아니죠. 선관위에 등록한 공식기구입니다. 공식기구이기 때문에 규약이 있어요. 국가로 치면 헌법 같은 거죠. 그 규약에 의사결정 구조가 정해져 있습니다. 이 과정을 무시한 거잖아요. 기구를 무시한거고. 그렇죠? 그런 점에서 충격이었죠.

 

기자: 죄송한 말씀이지만, 속았다는 이런 생각이 좀 든 건가요?

윤여준: 하하하 어느 신문은 물 먹었다고 표현하고 그랬다면서도, 뭐 속았다 는 생각까지는 아니어도 일단은 충격적이었던 건 사실이에요. 워낙 뜻밖이었고. 그것도 그렇게 필요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필요성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소수의 약한 정당으로 뜻을 이루기 어려우니까. 거대한 정당하고 힘을 합쳐서 가면 더 큰 그릇을 얻는 거니까. 새정치를 구현하는데 효과적이겠다, 생각할 수는 있어요.

그렇기는 하나, 그렇게 생각했다면 공동위원장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거론했어야죠. 그래서 위원장들도 똑같이 새정치를 구현하자고 와 있는 분들이니까, 그게 더 효과적인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동의 안했겠습니까? 얼마든지 설득할 수 있고 동의를 구할 수 있는데도 그런 절차를 생략하고 한 밤 중에 혼자 독단적으로 합의했다는 거에 대해서는, 수용하기 어려웠죠 그 당시로서는.

 

- 2014년 4월 2일 SBS 취재파일, 윤여준 인터뷰 기사 중 발췌

 

 

이걸 부정적으로 나쁘게 보면 소위 말하는 '밀실 야합'에 가까운 건데, 오죽하면 민주당 김광진 의원도 3월 2일 자신의 트위터에 "아니! 언제부터 민주당이 해산, 합당, 신당창당의 권한을 당대표1인에게 부여했습니까? 절차적 민주주의가 지켜지지않으면 그 결과에 대한 신뢰도 담보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다. 통합선언 직후의 관련 포스팅에서도 이미 얘기했듯이, 무슨 기업 합병도 아니고 민주주의 정당이 합쳐지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비밀리에 자기들끼리만 모여서 합의한 걸 도대체 무슨 근거를 들어 정당화할 수 있을까?

 

[2014년 3월 2일 한겨레 보도]

 

신당이 공식 출범한 지 채 열흘도 안 돼서 벌써부터 내홍이 불거져 나오는 건, 이런 측면에서 보면 어쩌면 당연할 일이다. 아무에게도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비민주적인 과정을 거쳐서 신당을 창당했으니, 당원들이나 지지자들이 얼떨결에 따라가긴 하지만 뭔가 화학적 결합이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금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당직자들 사이에서도 당내 실무를 집행하는 데 있어서 여러가지 크고 작은 갈등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6월 지방선거를 새정치민주연합이 매끄럽게 잘 치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유일한 통합의 명분이었던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의 딜레마

 

사실상, 새정치연합과 민주당 합당은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무공천)'가 거의 유일한 명분이었다. 혹시나 다른 명분이 있는지 현재까지 아무리 찾아봐도, 안타깝지만 도무지 별다른 게 없다. 안철수가 정당개혁 과제로 기존 정당들에게 먼저 제안했고, 2월 28일 오후 민주당이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확정하면서, 결국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의 통합 논의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이때 김한길이 안철수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고, 이에 대해 안철수는 "기초선거 공천 폐지라는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큰 결단을 평가하고 싶다"라고 화답했단다. 그리고 단 이틀 만에 안철수와 김한길의 통합·창당 선언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전국동시 지방선거를 딱 두 달 남겨놓은 지금, 바로 이 문제가 새정치민주연합 내분의 핵으로 떠올랐다. 이유는 간단하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무공천에 대해 입을 꾹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기초선거 정당공천'정당 중심의 책임정치 구현'이라는 밝은 면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중앙정치 예속'이라는 어두운 면이 공존하는 문제인데, 만약 제도적인 무공천(모든 정당이 원천적으로 공천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만의 홀로 무공천이라면 그 실효성을 전혀 장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선거에서 상당히 불리할 수도 있다.

 

그러니 당연히 이견이 나올 수밖에 없고, 정당공천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3월 초 통합·창당 선언 직후에도 신당 관계자들 사이에서 벌써부터 '(공천은 하지 않지만) 합법적으로 지지 후보를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숙고 중'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으니, 무공천을 두고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 간 충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급기야 바로 어제, 신경민 최고위원은 "무공천을 하려면 차라리 정당을 해산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 (무공천이) 새정치의 대표 브랜드가 될 수는 없다. 어찌보면 허접한 결단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유일한 통합의 명분인 무공천이 이토록 큰 반발에 직면했으니, 안철수와 김한길은 난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14/03/03 - 정치꾼들만 웃었고 새정치는 없었던 통합신당 발표 [클릭]

 

 

한 달 전 관련 포스트에서 말했듯이, 애초에 무공천이 유일한 통합의 명분이 된 것부터가 잘못이다. 물론 풀뿌리 민주주의에서 기초선거의 선출직 공무원들이 중앙정치에 예속되는 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지금처럼 지방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과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다른 보완책은 내놓지도 않고) 무조건 정당이 공천을 하지 않는다고만 해서 과연 지역정치가 발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안 그래도 요즘 지방토호들의 기초의회 장악이 심상치 않은데, 새누리당이 정당공천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새정치민주연합만 공천 폐지를 한다고 특별히 뭔가 개선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은 '초보' 정치인인 안철수나 가질 수 있는 순진한 기대 아닌가?

[노회찬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공약은) 정치불신에 편승한 포퓰리즘 공약이었다"]

 

어쨌든 비민주적인 통합 과정 속에서 무공천이 거의 유일한 명분이 됐고, 이제 새누리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냥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는 '꽃놀이패'를 쥐게 됐다. 왜냐 하면 지금 상황에서 어차피 새정치민주연합의 무공천 내분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이를 지켜보는 유권자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한길과 안철수는 무공천을 포기하는 게 곧 합당의 명분을 부정하는 꼴이니 그러기가 참 어렵고, 특히 안철수는 겨우 무공천 하나 내세워서 '제3정당'을 포기하고 들어왔으니 어쩌면 자기 정치생명의 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수천 명의 지방선거 후보들을 나몰라라 할 수도 없는 일이니, 말 그대로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꽃놀이패인 새누리당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인 새정치민주연합, 6월 지방선거가 참 걱정스러운 이유다.

 

 

안철수가 말한 '새정치'의 근본적인 문제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기초선거 공천 폐지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안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다당제 국가인 한국에서 양당제 고착을 가장 확실하게 해소할 수 있고 민의를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인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있는데, 만약 이게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 명분이었다면 어땠을까? 분명히 지금보다는 상황이 훨씬 더 나았을 것이다(개인적으로도 이 부분이 가장 아쉽다). 다른 야권 정치세력들 흔히 말하는 진보정당 정치인과 지지자들의 호응도 받을 수 있었을 테고, 당장 6월 지방선거가 아니라 총선까지 아우르는 정말 장기적인 아젠다를 주도할 수도 있었을 거란 말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새정치민주연합은 통합 과정의 잘못으로 인해 너무 궁색한 명분인 무공천의 딜레마에 빠져버렸고, 신당 효과도 없이 계속 지지율이 하락하고만 있다.

 

그런데 사실, 이것 말고도 안철수가 말한 '새정치'의 근본적인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도대체 새정치란 게 뭔가? 안철수가 정치무대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지난 2년 여 동안 단 한 번도 제대 설명된 적이 없다. 바로 옆에 있었던 윤여준조차 며칠 전 인터뷰에서 "우리끼리 따로 앉아서도 그 부분을 토론해 본 일이 없어요 ... 우리끼리 앉아서라도 새정치라는게 뭐냐, 뭘해야 하느냐 하는 것을 놓고 아주 난상토론을 해봄직한데, 그런 기회를 한 번도 못 가졌어요 ... 저 자신도 안 의원이 생각하고 있는 새정치의 핵심 내용을 잘 모릅니다 사실은."이라고 말할 정도니, 일반 국민들은 오죽할까?

 

이런 안철수가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대표이고, 무공천 내분에 직면해 있다. 만약 김한길과 안철수가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만을 가지고 비민주적인 통합을 급하게 확정할 게 아니라, 일단 6월 지방선거 무공천 원칙만 밝힌 이후에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정식 논의 기구를 함께 만들어서 합당 또는 공동 신당 창당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면? 그랬으면 새누리당에 가만히 있기만 해도 이익이 되는 꽃놀이패를 쥐어주는 일도 없었을 테고, 설사 이번 지방선거에서 무공천 약속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안철수 개인으로 보나 신당 전체적으로 보나) 지금보다 부담이 훨씬 적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통합 과정의 비민주성이 발목을 잡는 일도 없었을 테고, 내부적으로도 좀 더 화학적 결합이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통합 당시부터 예견됐던 무공천 내분이 현실화됐다. 그러니 이제 달리 도리가 없다. 안철수가 유권자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무공천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아예 목숨 걸고 새누리당을 포함한 제도적인 무공천을 관철시키는 수밖에. 물론, 아쉬울 게 없는 새누리당이 그럴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게 명백한데.. 지금 남은 건 결국 안철수의 결단이다. 솔직하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든가, 평생 살아온 자신의 스타일을 벗어던지고 거리로 나서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어쩌면, 이번 위기가 안철수에게 '간철수' 딱지를 떼고 전화위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게 곧 정치인으로서의 실패를 의미하지도 않고, 거리로 나선다고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단순히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보다) 바로 이 순간, 정말 그 과정이 중요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민주주의는 과정이다. 안철수는 더 이상 CEO가 아니고 정치인이다. 부디,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 도출에만 몰두하는 모습은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 과정이 마지막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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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ART

Posted by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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