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논란이 많았던 SBS <짝>이 이토록 오랫동안 방영될 수 있었던 이유.

 

방송 제작 과정에서 출연자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 SBS <짝>의 폐지가 결정됐고, 본방시간이었던 어젯밤에는 긴급편성 영화가 방송됐다. 이 프로그램은 2011년 3월부터 2014년 2월까지 지상파에서 방영됐으니, 만 3년 동안 거의 매주 수요일 밤 11시에 전국에서 볼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다(총 140회, 68기). 평균 시청률은 7% 내외 정도 나온 것 같고 보통 한 기수가 12명이라고 하니, 그 동안 짝에 출연한 인원만 해도 총 800명쯤 되는 셈이다. 아마도, 전문방송인이 개입하지 않고 오로지 일반인만으로 구성되는 '관찰 예능'으로서는 최장기간 · 최다인원이 참여했던 프로그램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평소에 뉴스를 자주 보는 입장에서 생각하기에, 짝은 반복적으로 2~3주에 한 번씩은 계속 논란이 되었던 것 같다. 특정 출연자의 발언이나 행적에서부터 짝의 기본적인 컨셉과 편집방식까지, 방송이 나가고 그 다음날이 되면 항상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다. 물론 프로그램의 성격 자체가 선정적인 연예매체들의 주기적인 어뷰징 소재로서 안성맞춤인 측면도 있지만, 어쨌든 대중이 그만큼 관심이 있기도 했다(일일시청률을 보면 지속적으로 예능 5위권이었고, 동시간대 방송되는 MBC <라디오스타>와 비슷한 시청률로 경쟁했다).

 

[이미지 출처: SBS 짝 홈페이지 갈무리]

 

사실, '짝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일반 시청자들 사이에서 '도대체 이런 이상한 프로그램을 왜 보냐'라는 말이 나오는 건 무척 흔한 일이었고, 문화 비평이나 칼럼으로도 지극히 부정적인 얘기가 나오는 것 역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짝은 1년도 못 채우고 폐지되는 예능이 부지기수인 상황에서 무려 3년이나 방송됐고, 일반인들도 이제까지 수백 명이 끊임없이 출연했다. 자, 한 번 생각해 보자. 거의 매번 구설수에 오르는 프로그램이 (어쩌면 이게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지만) 매주 시청률도 괜찮게 나왔고, 언제나 일반인 출연자가 있었으며, 경쟁이 치열한 예능계에서 3년이나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 식으로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적절한 것 아닐까?

 

흔히 말하는 '막장드라마'와 유사한 <짝>의 시청률

 

개인적으로는 '종편'의 시사 프로그램만큼이나 해악이 심각한 것이 바로 '막장드라마'라고 생각하는데, 이번에 문제가 된 SBS <짝>도 이와 좀 비슷한 듯싶다. 막장드라마를 가장 확실하게 표현한 말이 '욕하면서도 본다'일 테고, 통속적인 젊은 남녀의 짝짓기를 가학적으로 지켜보는 짝 역시 그런 측면이 있는 것이다. 아마 매번 짝의 꾸준한 시청률을 담보하던 상당수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실소와 비웃음을 지었겠지만, 그래도 시끌시끌한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짝을 매주 수요일마다 봤다.

 

결국 '비웃으면서도 본다'인 셈인데, 막장드라마가 계속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지속적으로 제작되는 것에 시청자들도 책임이 있을 수밖에 없듯이, 짝이 3년 동안 방영되다가 최악의 극단적인 결과를 내고 폐지된 데 대해 시청자들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예능국이 아닌 교양국에서 만드는) 짝의 시청률이 만약 다른 교양 프로그램들처럼 낮았다면, 많은 문제가 있었던 짝은 벌써 1~2년 전에 종영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설사 폐지는 되지 않았더라도 짝보다 시청률이 훨씬 더 높은 <정글의 법칙>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주요 시청자들의 격렬한 비판을 받으면 프로그램의 흐름이나 분위기도 약간이나마 바뀌기 마련이다. 그런데 짝은 이제까지 그런 변화가 없었고, 이렇게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이미지 출처: 2014년 3월 6일 KBS뉴스 갈무리]

 

그런데 우리는 이쯤에서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토록 논란이 많았던 프로그램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본 컨셉을 유치한 채 인기리에 방영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짝은 전적으로 일반인이 출연해서 짝짓기를 하는 프로그램인데, (이전에 주로 스튜디오에서 하루만에 녹화한 여타 프로그램들과는 달리) '관찰 예능'으로서 그 모습을 특히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꽤 긴 시간인 6박 7일 동안 남녀가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야외 합숙을 하며 짝을 찾고, 동성간 경쟁구도 속에서 드라마적 요소를 극대화하는 게 핵심이다. 이것만 봐도 누구나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런 촬영 자체가 여러모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 출연하겠다는 일반인이 계속 있었고, 대중들은 이걸 즐겼다.

 

연애 포기의 시대, <짝>을 통한 대리만족과 그 위험성

 

요즘 대한민국 젊은이들은 '3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게 된 20~30대)'라고 불린다. 다수가 비정규직인 상황에서 경제적인 문제가 물론 크겠지만, 무조건 '돈' 때문이라고 단순하게만 생각할 수도 없다. 짧게 설명하기 힘든 다양하고 복합적인 원인이 있고, 10대~30대의 사망원인 1위가 다름 아닌 '자살'이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한마디로, 지금 청년들은 미래도 없고 여유도 없는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결혼을 아예 선택하지 않는 '비혼' 상태의 결혼적령기 남녀가 너무나 많고, 작년 출생률이 통계 작성이래 최저를 기록한 것에서 보듯이 3포세대는 그저 이론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의 엄연한 현실이다.

[출생률은 가장 낮고 자살률은 가장 높은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전세계적으로 이런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혼이나 출산이 일반적인 통계로 잡히는 반면 연애는 마땅한 통계 자체가 없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이걸 한번 직접적으로 조사해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경악할 만한 수치가 나올 테고, 일본의 '건어물녀'나 '절식남' 못지 않은 사회 문제가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남성들의 '여성혐오'나 여성들의 '성형중독' 등도 심각한 상황이고, 소위 말하는 '은둔형 외톨이'도 적지 않다. 이런 연애 포기의 시대에, <짝>은 일종의 대리만족 수단일 수 있다. '포르노'와 '걸그룹' 사이에서 방황하는 젊은 남성들 그리고 '취집'과 '명품'에 길들여진 젊은 여성들이, 그나마 실제 연애 상황을 유추해볼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어쩌면, <짝>의 일반인 출연자와 주요 시청자는 '적극성'의 차이뿐인지도 모른다).

 

[이미지 출처: 2013년 9월 4일 SBS뉴스 갈무리]

 

물론 현실과는 많이 다르지만 '남자사람'이나 '여자사람'을 이성으로 만날 일이 별로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래도 오로지 '연애'에만 몰입하는 일반인들의 일주일을 밀도 있게 볼 수 있는 시간인 셈이다. 바로 이것이 계속되는 논란 속에서도 짝이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이고, 연애 포기의 시대에 이와 같은 욕구는 꽤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이런 대리만족은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거의 모든 드라마작가들이 여성이고 주시청자가 여성인 상황에서 시청률 경쟁이 치열해지면 등장 남성들의 캐릭터가 점점 더 비현실적이 되듯이, 지극히 부자연스럽게 오직 '연애의 성패'에만 올인한 관찰 예능은 언제든 일반인 출연자에 대한 무리한 캐릭터 설정과 '악마의 편집'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걸 사람들이 몰랐을까? 짝의 제작진은 물론이고, 일반인 출연자들도 웬만하면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한 수요는 분명히 존재하고, 제작진은 시청률 때문에 또 출연자는 외로운데 뭔가 특별하게 연애하고 싶어서 그리고 시청자는 대리만족과 가학적 재미를 위해서 <짝>이라는 프로그램을 계속 '이용'해 왔다. 어차피 연애 포기의 시대라면, 이런 모험을 좀 해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짝을 폐지한다고 뭔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자살사건이 터졌으니 한동안은 잠잠할지 몰라도, 우리 사회가 현실적으로 이런 수요를 해결할 방안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방송 관계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여기에 대응하는 유사한 컨셉의 프로그램을 또 만들어낼 것이다. 분명한 욕구가 있고 일정 수준 이상의 시청률이 보장되는데, 도대체 왜 포기하겠는가? 단지 악순환의 일시적 중단일 뿐이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대하는 기본 자세와 사회 환경

 

<정글의 법칙> 거짓말 논란에서도 봤듯이, 리얼리티 프로그램 역시 '작가'와 '편집'을 통해 재구성된 픽션이다. 현실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었을 뿐이지, 진짜 현실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되지 않을까 싶고, 촬영 가이드라인이나 출연자의 선택권도 사전에 명확하게 규정하고 투명하게 안내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일반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제작 과정을 과연 어느 정도 선까지 공개할지에 대해 일정한 합의가 필요할 것 같고, 일반인들도 애초에 공개된 사항에 관해서는 분명히 인식하고 신중하게 출연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건 단순히 텔레비전에 자기 모습이 나오는 게 아니라 일종의 '계약'이고, 편집과 작가에 의해 허구적으로 재구성될 환경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모든 위험성을 다 피할 순 없으며, 그로 인해 이득을 보든 손해를 보든 자기가 책임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문제는 넓게 보면 막장드라마의 근본적인 해법과 비슷하다. 막장드라마의 시청률이 실제로 높게 나오는 상황에서, 도대체 무슨 수로 막장드라마가 끊이지 않고 제작되는 걸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막장드라마 중독법이라도 만들 텐가? 결국에는 대중들이 막장드라마를 보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럽게 퇴출시키는 길밖에 없다. 너무 막연한 해결책인 것 같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대중들이 막장드라마를 계속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여기서 또 사회 얘기를 할 수밖에 없고, 위에서 한 말들이 다시 반복된다(물론 저질 막장드라마를 계속해서 생산해내는 제작 관련자들의 잘못이 없는 건 전혀 아니다). 결국, 일회성으로 막장드라마를 욕하거나 <짝> 같은 프로그램을 당장 폐지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닌 것이다. 우리 사회의 환경이 바뀌어야 이런 일들이 재발하는 걸 진짜 막을 수 있다.

 

오죽하면 영국과 프랑스의 저명한 언론인 'BBC(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와 '르몽드(Le Monde)'가 짝 출연자 자살 사건을 보도하면서 마지막에 똑같이 한국의 자살률을 언급했을까? 이 사건은 그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작게는 방송 제작 환경의 문제이자 크게는 '연애 포기의 시대' 대한민국의 비뚤어진 자화상이다. 가학적인 대리만족을 즐겼던 시청자들, 미디어 감시는 뒷전으로 내팽개친 채 기사 낚시질과 어뷰징에만 몰두한 한국 언론들, 시청률이 높다고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을 전혀 개선하지 않은 방송사와 제작진 등에 모두 책임이 있는 것이다. 만약에 이번에도 그냥 냄비처럼 한번 끓고 만다면, 분명히 말하건대 이런 일은 또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대하는 기본자세와 프로그램 제작방식의 개선이 있어야 하고, 자살률과 3포세대에 대해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나서야만 한다!

 

La Corée du Sud affiche le taux de suicide le plus élevé de l’Organisation de coopération et de développement économiques (OCDE), avec 33,5 cas pour 100 000 habitants en 2010, soit 50 suicides par jour.

한국의 자살률은 2010년 현재 인구 10만명당 33.5명으로(하루 50명 꼴)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 2014년 3월 6일 르몽드 기사 <Une candidate de télé-réalité se suicide en Corée du Sud>의 마지막 문장 (번역 출처: 뉴스프로)

 

South Korea has the highest suicide rate in the developed world. The latest government statistics indicate that the rate has tripled in the last two decades to 28 people per 100,000.
한국은 선진국에서 최고의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 최근 정부의 통계는 자살률이 지난 이십년 동안 십만명당 28명으로 세배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 2014년 3월 6일 BBC 기사 <Woman hangs herself in Korean reality television show>의 마지막 문장 (번역 출처: 뉴스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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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서정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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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장지기 2014.03.13 09: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사드리고 갑니다..
    즐겨보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아쉽기는 하네요..

  2. jagto 2014.03.13 10: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살의 정확한 원인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데, 외신기사에서처럼 한국사회 총체적인 문제의 축소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