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코미디영화보다 더 웃기는 위협, 김관진 국방부장관을 향한 밀가루와 종이 살포.

 

취임한 지 52일 만에야 간신히 구성이 완료된 박근혜 정권의 조직도를 보면(처음부터 시끄러웠던 이명박 정권의 초대 내각 구성보다도 무려 한 달 이상 더 늦은 셈), 17명의 장관 중에서 유일하게 유임된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다. 사실 김병관이라는 새 장관 후보자를 박근혜 대통령이 2월 13일에 지명하기도 했었지만, 검증 과정에서 수많은 악질적인 의혹들이 제기됐고, 40여 일 가까이 버티던 김병관 후보자는 결국 3월 22일에 자진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초대 내각 인선에서 낙마한 후보자: 김종훈(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황철주(중소기업청장), 김학의(법무부 차관), 김병관(국방부 장관), 한만수(공정거래위원장)]

 

아무튼 김관진은 이명박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권에서도 국방부 장관직을 계속 수행하고 있는데(2010년 12월 취임), 언론이 대표적인 '대북강경파'라고 보는 김관진 장관을 남한의 소위 말하는 보수 쪽에서는 상당히 괜찮은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우선 그는 북한을 향한 '주적' 개념을 확실하게 표명하고 있으며, 남북이 언론플레이를 할 때마다 "강력 응징"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비슷한 새누리당 정권인 이명박과 박근혜 사이에서 연임이 결정됐을 때에도 보수언론이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은 듯하고(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두 정부에서 잇따라 국방부 장관을 지내는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지금도 후임자 지명 없이 그대로 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이다.

 

[사진자료: 연합뉴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북한 언론에서도 김관진 장관을 씹는(?)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대표적으로는 2011년 5월 말에 남한의 일부 예비군 훈련장에서 고(故)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아들 김정은의 사진을 표적으로 사격 훈련을 실시한 사건에 대한 북한의 반응에서도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등장한다. 북한군이 곧 "실제적이고 전면적인 군사적 보복행동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하며 "이번 특대형 범죄를 저지른 국방부장관 김관진을 비롯한 군사불한당들을 민족공동의 이름으로 처형하는 즉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인 4월 9일에는 북한의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가 김관진 장관의 사진을 과녁 삼아 사격 훈련을 하는 북한군과, 공격 연습용 허수아비에 붙은 김 장관의 사진을 물어뜯는 군견의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단다. 그러자 중앙일보나 동아일보의 채널A 등은 즉각 이에 관한 기사를 내보냈고, 조선일보 역시 관련 기사와 함께 4월 10일에는 <北의 단골표적은 김관진 국방>이라는 기사를 썼다. 결국 남한의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북한군의 주타겟이 되었다는 말인데, 언제나처럼 직접적인 사건은 4월 재보궐 선거 직전에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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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코믹쇼, 국방부 바로 코앞에서 국방부 장관 협박 전단 살포!

 

지난 4월 19일 새벽 5시쯤, 국방부 청사가 위치해 있는 용산구 근처의 식당가에서 약 30m에 걸쳐 김관진 장관을 협박하는 내용의 전단지가 다수 발견됐다. 수거된 전단지는 총 494매라고 하는데, 아마도 500매를 만들었지만 새벽 바람에 몇 장이 날아간 걸로 추정된다. 이 전단을 발견한 식당주인은 곧장 경찰에 신고했고, 국방부와 경찰은 합동수사를 벌였다. 그날 오후 서울 용산경찰서의 수사관계자들은 '김관진 국방부 장관 비방 유인물 배포' 관련 브리핑을 했는데, 경찰은 사건 발생 단 몇 시간 만에 '이 전단은 북한 측이 배포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사진자료: 뉴스1]

 

경찰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판단한 이유는 한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다.

 

- 전단에 인쇄된 "북의 최고 존엄을 함부로 건드리며"라는은 북한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표현이다. 북한에서는 스스로를 '북'이라고 지칭하지 않고, '공화국' 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등으로 지칭한다.

- 전단에 사용된 글씨체는 'HY백송B'체로 마치 북한에서 사용하는 서체와 유사한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는 남한에서 사용하는 글씨체이다.

- 전단지의 크기가 A4용지의 절반인 A5용지 크기인데, 양쪽으로 인쇄돼 커터칼로 절반 정도가 무척 조악하게 잘려 있었다.

 

[한글 워드프로세서로 글자 크기를 크게 해서 HY백송B체(한글과컴퓨터 프로그램만 있으면 누구나 쓸 수 있다)로 한 면에 두 개씩 똑같은 문장을 250장(A4용지) 정도 흑백인쇄한 다음 커터칼을 들고 일일이 잘랐다는 얘기?]

 

길게 설명 안 해도, 의무교육만 제대로 받았다면 이 사건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 금방 판단할 수 있으리라. 한 국방부 출입기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을 보면 국방부 주변에는 알게 모르게 많은 CCTV가 있다는데, 밤 늦게까지 영업하는 유명 식당가(흔히 말하는 맛집도 몇 군데 있다)의 새벽은 왔다갔다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을 테고 겨우 30미터에 걸쳐 500여 장이나 뿌렸다면 CCTV에는 단박에 포착됐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전단지를 뿌린 범인은 참 게으른 인간인 듯한데, 그래도 통일부 등을 출입하는 일부 기자들에게 메일까지 보내서 자신의 계획을 밝힌 걸 보면 꽤 오랫동안 준비하기는 한 것 같다.

 

2차 코믹쇼, 국방부 장관 앞으로 식용 밀가루 소포 발송!

 

그리고 바로 어제 4월 23일 오전 10시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을 수신인으로 해서 소포 하나가 배달됐다. 발신인은 표기되어 있지 않았고, 노란색 봉투에 담긴 소포에는 어른 주먹 만한 크기로 백색 가루가 담긴 비닐봉지가 들어 있었다. 또한 지난 19일에 살포된 유인물과 똑같은 내용을 담은 전단지도 들어 있었는데, 국방부가 공개한 아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위 사진과 동일한 유인물이다. 이번에도 단 몇 시간 만에 국방부 관계자는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에서 김 장관에게 배달된 소포안의 백색 가루 성분을 정밀 분석한 결과 시중에서 유통되는 식용 밀가루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진제공: 국방부]

 

두 번째 사건도 마찬가지다. 어찌나 코믹한지.. 아마 충무로의 많은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들이 뉴스를 보고 이 일을 코미디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리라. 소포는 동대문 우체국 소인이 정직하게 찍혀 있었고, 수신 주소도 깔끔하게 워드로 출력해서 붙였다.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동일인의 소행인 걸로 보이는데, 첫 번째 사건에서처럼 무척 게으른 태도로 그냥 아무 비닐봉지에다가 밀가루를 넣고 묶어서 보냈다. 아니, 요즘말로 시크한 건가..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다. 이 두 사건의 범인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프로페셔널(?)은 아니라는 점.

 

사실 일반인도 한 나라의 국방부 장관에게 발신인 표시가 없는 괴소포를 보내면 중간에 분명히 검색 과정에서 걸릴 거라는 것 정도는 간단히 예상할 수 있지 않나? (실제로는 국방부의 엑스레이와 금속탐지기 검색대를 통과했다고 한다. 내용물 자체가 식용 밀가루니까 별 문제 없이 통과했는데, 나중에 문서수발실의 육안 검사에서 걸렸단다) 그리고 동대문 우체국 소인이 그대로 찍혀 있으니, 수사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금방 추적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부분은 첫 사건의 국방부 주변 CCTV 문제와 좀 비슷하다) 또 결과적으로 국방부는 이번 일 때문에 검문검색을 강화했으며, 이제 김관진 장관을 해칠 수 있는 여지는 더 줄어들었다. 겨우 밀가루를 보낸 행위로 인해서 말이다.

 

두 번에 걸친 촌극,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자, 일반인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자.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를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건의 내용을 보면 몇 가지 잠정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는 있다. 우선, 범인은 그다지 명석한 두뇌를 가지지 못했거나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게 아닐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설사 수사기관에 발각된다 하더라도 별로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왜냐하면 두 사건 모두 방법 자체가 무척 촌스럽고 웃음이 나올 만큼 변변치 못한데, 이렇게 보통 사람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조악한 방법으로 감히 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을 협박하려고 했다는 게 전혀 합리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 단순히 이런 일도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거나, 어떤 식으로든 자신은 처벌을 받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없다면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너무 많다.

그 다음, 범인은 실제로 김관진 장관을 해할 생각은 별로 없는 걸로 보인다. 정말로 김관진을 해칠 목적이었다면, 전혀 와닿지 않는 저런 어줍잖은 문장으로 유인물을 뿌릴 게 아니라 개인비리를 증거와 함께 적어서 뿌리거나 아니면 훨씬 더 직접적인 표현으로 살해 위협을 했을 것이다. 게다가 유동인구도 별로 없는 새벽 시간에 국방부 바로 옆 골목에 전단을 살포한다는 건 도무지 말이 안 된다 (사람들이 보기도 전에 적발되서 수거되는 게 당연하다). 아예 사람이 많은 종로나 강남에 뿌리거나, 아니면 식당 손님이 아주 북적이는 저녁 시간에 살포하려고 하는 게 훨씬 정상적이다. 그리고 대놓고 저렇게 정직하게 소포를 보낼 정도면 최소한 그 내용물이라도 뭔가 위협적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진정성이 드러나는데, 보낸다는 게 고작 시중에 유통되는 식용 밀가루였다. 이건 그저 '바보' 아니면 '장난'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범인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짓을 벌였을까? 일각에서 말하는 소위 종북세력의 테러일까? 진짜 제정신이 박힌 종북주의자라면, 이러한 도발이 남한에서 얼마나 엄청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일인지 모를 리가 있나? 솔직히 말해, 이렇게 코믹하게 일을 저지른다는 게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정말 바보가 아닌 이상,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참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극도의 남북 긴장 상황 하에서 무려 국방부 장관을 향해 테러(?) 기도가 있었는데, 경찰이나 군 수사당국이 너무나 태연하다는 점이다. 물론 방법 자체가 말도 안 되게 어이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두 번이나 동일인의 소행으로 보이는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지나치게 느긋하다. 국방부 주변의 CCTV는? 또 동대문 우체국 소인은? 그냥 일반인이 보기에, 수사당국의 태도가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지금 보면, 종편을 비롯한 몇몇 언론들만 아주 신났으니 말이다(요즘 종편은 북한 때문에 살판났다).

 

아무튼 오늘은 안철수와 김무성이 출마한 4월 재보궐 선거 투표일이고, 이 결과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은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철수가 과연 국회에 입성할 수 있을까? 그리고 김무성은? 문득, 국정원의 조직적인 대선 개입 의혹이 떠오른다. 박근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리고 오늘 재보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길 바라고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 대한민국 정치는 정통 코미디인가, 블랙 코미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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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ART

Posted by 아서정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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