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위기가 아닌 아예 '정치'란 것 자체가 사라진 한국,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다.

 

우선, 최근에 있었던 몇 가지 주목되는 사건들을 한 번 정리해 보자.

 

- 바로 어제 4월 16일, 정부·새누리당·민주통합당은 향후 5년간 양도소득세 면제 기준을 당초 '9억원 이하,전용면적 85㎡ 이하'에서 '6억 원 이하' 또는 '전용면적 85㎡ 이하'로 완화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의 경우 금년에 6억 원 이하의 주택을 구입할 경우 취득세를 면제하며, 애초에 정부가 제시했던 면적 기준을 없애는 한편 부부합산 소득을 6000만 원에서 7000만 원 이하로 완화했다. 결국 수혜대상이 크게 늘었고, 세금 면제 규모도 커졌다. 대한민국의 공공부채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엄청나게 늘어난 현 상황에서 오히려 감세를 결정한 셈인데, 재정 붕괴의 위험 속에서 진정 국민 전체를 위한 '정치'는 여야를 막론하고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 민주통합당은 요즘 5월 4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대표 선거를 치르고 있으며, 이때 채택할 당 강령 및 정강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민주당 전대준비위원회 산하 강령 정책분과위에 따르면, 최근 회의에서 기존의 '보편적 복지'라는 표현 대신 '복지국가의 완성'으로 바꾸며, 당의 반기업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기업의 창의적 활동을 촉진 지원한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서는 '튼튼한 안보'와 '북한 인권에도 관심을 갖는다'는 문구 삽입을 검토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결국, 민주당의 노선을 지금보다 더 중도 지향으로 대폭 선회하겠다는 말이다. 만약 5.4 전당대회에서 이런 식의 전향이 실제로 이뤄진다면, 이제 민주당은 새누리당과의 차별성이 거의 다 사라지고 현재보다 훨씬 더 보수우파에 가까운 정당이 되는 셈이다.

 

- 지난 4월 9일, 민주통합당은 대선평가보고서를 발표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는데, 결국 통렬한 자기 반성은 없이 지난 대선 패배의 책임을 그저 '계파'와 특정 개인에게 돌려버린 민주당은 제1야당으로서 완전히 치명타를 맞은 분위기다. 소위 말하는 진보 인사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까지 '구제불능' 민주당을 성토하고 있으며, 지난 대선에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표를 얻은 후보를 대놓고 비난함으로써 자신들의 지지기반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거의 유명무실해진 다른 야당들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민주통합당은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으며, 아직 그 어떤 실체적인 모습도 보여주고 있지 못한 안철수 신당을 포함하여, 대한민국의 그 어떤 야당도 대안세력으로서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 최근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새누리당 소속 경남도의원들이 진주의료원 폐업을 추진하면서 도의회에서의 날치기 통과까지 감행하며 전국적인 비판을 받고 있지만,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된 대통령이 이끄는 청와대와 국회의 다수당인 새누리당은 그 어떤 '정치력'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진주의료원 사태와 관련해 악화일로에 있는 현상황에서 박근혜 정권과 집권당은 그저 '남의 집 불구경'만 하고 있는 것이다. 이토록 있으나 마나 한 집권세력이 과연 예전에도 존재했는지 의문이다.

 

- 박근혜 대통령은 4월 15일로 취임 50일을 맞았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박근혜 정권은 완전한 모습으로 출범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조직법 논란부터 시작해서 무려 2달이 가까워지는 현재까지 제자리를 잡지 못한 부처와 장관이 있을 정도로 총체적인 인사 참사가 불거졌는데, 이 과정에서 국회는 전반적으로 너무나 어정쩡한 태도를 유지하며 검증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국민들의 인사청문회 피로감은 극에 달했고, 나중에는 누가 장관으로 실제 취임했는지 또 누가 낙마했는지 자체가 아예 관심밖의 문제가 되고 말았다. 결국 지금도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내정자는 아무런 결론 없이 그대로 버티고만 있다.

 

- 지난 2월 14일,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노회찬 의원이 8년 전 '삼성X파일' 사건의 뇌물 검사 명단을 공개한 것과 관련한 대법원 유죄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벌금형은 없고 징역형만 있는 통신비밀보호법 자체의 문제 때문에 이미 국회에는 개정안이 제출되어 있었고, 국민들로부터 직접 선택된 전체 국회의원의 과반이 넘는 무려 159명의 여야의원들이 2월 5일에 "법을 고칠 때까지 선고를 미뤄달라"는 탄원서를 대법원에 제출하기까지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노회찬 전 의원의 의원직 상실 직후에는 몇몇 정치인들이 판결의 부당함을 지적하기도 했지만 곧 사그라들었고, 이후 정치권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이게 바로 2013년 대한민국 정치권의 현실이다. 이건 단순히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예 그 차원을 뛰어넘어서, '정치'란 것 자체가 실종된 형국이다. 정치가 뭔가? 정치인들이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통제하며 국민의 안녕을 지키는 동시에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하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는 정치는 없고, 그저 단편적인 통치 행위나 행정, 야합과 동조만 있을 뿐이다. 도대체 정치세력들 간의 당연한 견제와 균형, 치열한 토론과 합의는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사진자료: 연합뉴스]

 

지리멸렬한 야당과 허수아비 같은 여당 그리고 독불장군 청와대

 

지금 대한민국 야권은 사실상 진공상태다. 흔히 말하는 진보정당들, 이를 테면 진보정의당·통합진보당·진보신당 등은 자체적인 문제들로 인한 어려움과 함께 최근에 경색된 남북 관계로 인해 소위 종북 논란까지 겹치면서 거의 정상적인 활동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너무 급하게 창당하느라 여러 가지 다양한 내부 문제를 안고 있는 진보정의당은 지금 '2단계 창당'을 준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노동단체나 여타 진보세력들로부터 별다른 지원도 못 받고 있는 걸로 보이고, 현재 국회의 여야 모두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은 요즘 이정희 외에는 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예 원내에 진출하지도 못한 진보신당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여당인 새누리당과 함께 실질적으로 국정을 논하는 건 거의 민주통합당 뿐인데, 위에서 몇 가지를 지적했듯이 현재 민주당은 거의 '새누리당 2중대'에 가깝다. 나랏빚이 국가 예산의 2배가 넘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서 현정부는 추가경정예산의 상당 부분을 또다시 국채 발행에 의존했는데도, '토건' 문제를 대하는 민주통합당의 자세는 실로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지금 민주통합당은 제1야당으로서 '증세'를 논해도 시원찮을 판에, 오히려 정부안보다 더 심한 '감세'를 새누리당과 야합한 것이야말로 완전히 자신들의 존재 의의를 망각한 작태다. 정녕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의 '한국판'을 보고 싶은 건가? 19대 국회 내내 민주당이 이런 식이라면, 민주당은 절대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새누리당은, 도대체 집권여당으로서 요즘 뭘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맨날 청와대 눈치나 보고 앉아 있고, 새누리당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은 지도부가 하자는 대로만 하는 거수기 노릇이나 하고 있다. 도대체가 엉망진창인 장관 후보자들을 놓고 하나의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으로서 제대로 한마디 비판도 못하고, 올초부터 인사권 행사에 있어서 자꾸 악수만 두는 청와대에 질질 끌려다니기만 했다. 그 어떤 짓을 해도 새누리당이 아무 말도 못하니까 청와대는 갈수록 더 고집불통이 되어 가는데지금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관계는 협의하는 관계가 아니라 그저 일방적으로 지침을 하달하고 동조하는 관계일 뿐인 듯싶다. 결국, 새누리당은 진짜 새 한 마리도 쫓아내지 못하는 허수아비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 홍준표와 새누리당 소속 경남도의원들이 저렇게 제멋대로 날뛰는 것 아닌가?

 

[2012년 9월 13일 파이낸셜뉴스 보도]

 

'정치'가 사라진 대한민국 정치가 불러올 재앙

 

2005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했고, 몇 년 전부터는 '정치민주화'가 아니라 '경제민주화'라는 말이 핵심적인 논의 과제가 되었으며, 재작년부터 '정당정치의 위기'라는 말이 무척 자주 나왔다. 이제 경제권력의 영향력이 정치권력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데, 작년 대선에서도 이 문제가 아주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새 정권이 출범했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어쩌면 2012년이 우리에겐 정치권력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당 개혁'은 필수적인 것이었고,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들도 어느 정도 자극을 받는 듯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는 완전히 실패했고, 2013년이 되자 '정치'란 것 자체가 아예 실종되어 버리고 말았다.

 

대한민국 정치는 그 어떤 이해관계도 제대로 조정하지 못하며, 마땅히 해야 할 최소한의 견제 기능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 일방적인 법으로 처리되고, 권력의 원천인 국민들로부터 당당하게 선택 받은 정치인이 재벌 장학생들로 채워져 있는 법원에 의해 의원직을 박탈당한다. 경제권력에 포섭된 고위 공무원들이 만든 정부 발의 법안이 국회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통과되고, 행정부는 자신들에게 부여된 강제력을 십분 발휘해 그것을 충실하게 이행해 나간다. 힘 없는 서민들은 그런 법에 복종할 수밖에 없으며, 사회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진다. 태어날 때부터 부유층의 자녀들은 출발선이 다르고 어려서부터 비싼 과외를 받은 그 아이들은 특목고나 자사고에 입학하지만, 그렇지 못한 중산층 이하 가정의 자녀들은 서서히 슬럼화되어 가고 있는 일반고에 입학할 뿐이다. 2013년 대한민국, 중산층 붕괴는 이미 시작되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공공부채와 가계부채는 엄청나게 늘어났고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복지수요는 앞으로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그 어떤 정치인도 부자감세 철회와 보편적 증세에 대해 제대로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 이 땅의 정치인들은 지금 눈 감고 귀 막고, 그저 재벌과 대통령의 눈치만 보고 앉아 있다. 어마어마한 각종 부채의 폭탄돌리기를 막을 정치인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실질적인 무국적 재벌과 연결된 극소수의 부유층 외에 대다수 국민들은 재정 파탄으로 인한 복지 붕괴에 대한 대책이 거의 없다. 치명적인 저출산과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자살률, 대한민국은 벌써 멸망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지만, 아쉽게도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진정한 '정치'가 사라졌다.

 

전국가적으로 인구 감소에 대한 직접적인 대비태세에 들어가야 하지만, 사회를 통합하고 갈등을 조정하며 함께 힘을 모아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정치는 지금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장기불황의 초저성장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 나라에 특별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몇몇 독과점 재벌들에 의한 착취가 일상화된 사회, 경제권력에 포섭된 정부가 각종 교통수단을 비롯해 의료까지 민영화하려는 사회, 진보정당들은 존재감도 없이 이리저리 찢기고 마구 흩어져 있으며 제1야당은 멍청하게 여당만 쫓아가기에 바쁘고 집권당은 그저 한 사람 눈치만 보는 사회. 국민 모두가 길을 잃었고, 정치 실종과 극심한 양극화 속에서 그 어떤 돌파구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더 절망적인 건, 폭탄은 아직 터지지도 않았고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짜 위기는 바로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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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서정 Arthur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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