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대북강경파가 주도했다는 남북비밀접촉과 한일군사협정의 배경은?
전국민적인 반대 여론에 부딪힌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GSOMIA)의 체결이 결국 보류됐다. 보도에 따르면, 6월 26일에 국무회의에서 비공개로 처리된 한일군사협정은 이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큰 논란이 일었고, 급기야 29일 오후에 서명식 시작을 불과 50여 분 남겨두고 취소되는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고 한다. 그러자 당장 정치권과 정부 내에서도 졸속으로 밀실처리한 것에 대해 책임론이 불거졌고, 김황식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정부의 협정 추진이 철저히 국익의 관점에서 추진되었지만 절차상의 문제로 의도하지 않게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드리게 된 점에 대해서는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김성환 외교통상부장관도 "일을 이렇게 만든 것에 대해 송구스럽다"고 사과했으며, 청와대 관계자 역시 문책론 대두에 관해 "절차상 하자가 있었지만 국익을 위해서 한 일이 아니냐"고 잘못을 일부 시인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보자면, 이번 한일군사협정 문제에서만큼은 MB정권 스스로도 최소한 '과정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바로 어제 청와대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에서 한일 군사정보협정에 대해 상세히 보고할 것 ... 국회 보고를 마치면 서명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하며, 특별히 이와 관련해서 "더 이상의 후속 조처는 없을 것"이란다. 한마디로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간 셈이고, 제19대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이 문제를 다루느냐가 앞으로 관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통령 선거를 몇 개월 앞둔 현시점에서 새누리당이 과연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야권은 괜히 국민감정을 건드리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이 협정을 찬성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한일군사협정의 추진에 관한 유력 정치인들의 발언 중에 주목되는 내용이 좀 있었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정두언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인류가 발명한 최초의, 가장 기본적인 조직관리원칙이 신상필벌임. 한일정보협정 관련 대통령이 절차문제로 질타했다는데 아직 문책은 없다고. 늘 그렇듯 이정부가 갈팡질팡하는 주된 이유는 신상필벌이 작동 않기 때문. 이 문제를 주도한 청와대 기획관부터 문책해야."라고 글을 남겼고,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의 이용섭 정책위의장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런 예민한 사안을 청와대가 아닌 총리실이나 각 부처가 청와대 몰래 주도할 수가 없고 구체적으로 김모 대외전략기획관이 사실상 실무를 주도했다라는 얘기들이 공공연하게 지금 돌아다니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세 참모, 실세 기획자로 불리는 청와대 김모 기획관
자,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과 민주통합당 이용섭 정책위의장이 말한 '청와대 김모 기획관'은 대체 누굴까? 우리 일반인의 입장에서 상황을 좀 더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 먼저 현정권의 외교안보라인을 한 번 살펴보자.
[2012년 7월 2일 국민일보 보도]
관련 신문기사들에 따르면, 여기서 등장하는 김모 기획관은 바로 청와대 대외정책기획관의 자리에 앉아 있는 김태효 기획관이라고 한다. 위의 이미지에 나와있는 바대로 그는 2008년 2월, 그러니까 MB정권이 처음 출범했을 때부터 청와대에서 일했던 인물이다. 무려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청와대의 대외정책을 담당해온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정리가 필요할 듯하다. 동아일보의 보도를 보면, 이명박과 김태효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0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사람은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2004년 주말 공부모임 참석자로 인연을 맺었다고 하며, 김태효는 이명박이 대선후보이던 시절부터 대외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핵심 참모라고 한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41세의 나이로 외교안보수석실 선임 비서관으로 발탁됐으며, MB가 가장 신뢰하는 '실세 참모' 중 한 명으로 꼽힌다고 한다. 그동안 이명박 정권 외교안보정책의 '실세 기획자'로 불려온 김태효 비서관은 2012년 1월에 대외전략 기획관으로 승진하게 되는데, 이것 자체가 '격려 승진'이라고 평가될 정도로 이 대통령은 김 기획관을 무척 신임한단다.
[기획관은 수석비서관(차관급)과 비서관(1급)의 중간 자리로 통상 수석급으로 분류되며, 수석회의에 참석하고 국무회의에 배석한다]
아무튼 정두언과 이용섭이 한일군사협정의 주도자로 지목한 청와대 김태효 대외정책기획관은 이렇듯 MB정권 처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외교안보정책 최고의 핵심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고,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중에서도 진짜 측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들 알다시피, 청와대 요직이나 장차관과 같은 위치는 일반적으로 한 정권 집권기간 내에서도 몇 번씩 얼굴이 바뀌는 자리다.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설사 아무런 실책이 없다고 하더라도 보통 길게 잡아서 2~3년을 넘기기가 힘든 편이다. 그런데 김태효 기획관은 MB정권이 출범할 때부터 현재까지 꼬박 4년을 그대로 있었고, 심지어는 '격려 승진'까지 했다. 이 정도면 정말 이명박과 김태효는 특별한 관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고, 바로 이 사람이 한일군사협정 추진과정을 실제로 총지휘했다고 해도 (MB정권이 이제까지 보여준 행태에 비춰봤을 때) 별로 이상할 건 없어 보인다. 그동안 김태효 기획관은 '비핵개방 3000', '북핵 일괄타결(그랜드바겐) 구상' 입안에도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각종 대북정책과 전시작전권 전환 연기, 한미 FTA 타결 등 한미동맹 이슈의 실무도 총괄했다고 한다. 그는 소위 말하는 대북원칙론자로 불렸고, 작년에 중국 베이징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전제로 한 대북 비밀접촉에 나서기도 했단다.
[사진 자료: 연합뉴스]
남북비밀접촉 돈봉투와 한일군사협정 밀실처리의 중심에 서있는 이명박의 최측근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신임한다는 김태효 기획관은 청와대내에서 대표적인 대북강경파이자 일본과 가까운 뉴라이트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계속 MB정권의 외교안보정책을 주도해온 그에게도 작년 6월에 위기가 찾아왔다.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에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던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의 내용을 폭로해버린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에 대한민국의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던 이 사건은, 북한이 비밀접촉의 녹음내용을 공개하겠다는 위협과 함께 가장 크게 논란이 되었던 부분, 즉 남측대표가 북측대표에게 돈봉투를 건넸다는 충격적인 사실 때문에 더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당시에 북한은 MB정권이 부인하고 있는 내용들에 대해 구체적인 협의 과정까지 공개하며 조목조목 반박했는데, 바로 돈봉투와 관련해서 김태효 기획관(당시에는 비서관)이 전면에 등장한다.
작년 6월의 신문기사들에 따르면,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제의를 위해 참석한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이) "시간이 매우 급하다고 하면서 대통령의 '의견'을 반영하여 작성했다는 일정계획이라는 것을 내놓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접촉이 결렬상태에 이르자 김태효의 지시에 따라 홍창화(국가정보원 국장)가 트렁크에서 돈봉투를 꺼내들자 김태효는 그것을 받아 우리 손에 쥐여주려고 하였다. 우리가 즉시 쳐던지자 김태효는 얼굴이 벌게져 안절부절 못하였으며, 홍창화는 어색한 동작으로 트렁크에 황급히 돈봉투를 걷어넣고 우리 대표들에게 작별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밝혔단다. 이를 주변상황과 함께 간단하게 다시 정리하자면, 북한의 폭로 내용은 '천안함 침몰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에 대하여 더이상 거론하지 않겠으니 이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을 가지자'던 남한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북측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을 만들어 내려고 했고, 북한이 이를 거부하자 김태효 기획관이 북측에 돈봉투를 건네려다 개망신을 당했다는 얘기다.
[2011년 6월 1일 한국경제 보도]
물론 북한의 폭로를 그대로 다 믿기는 어렵겠지만, 당시에 참석자로서 북한에 의해 실명이 공개된 정부당국자들이 정식으로 반박하기보다는 오히려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남북비밀접촉과 관련해서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은 누구나 들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그런데, 대북원칙론자이자 대북강경파로 불리던 청와대 김태효 대외정책기획관은 왜 하필이면 이런 문제로 북한당국과 남한국민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됐을까? 자신이 그토록 주창했고 또 MB 청와대가 항상 표방하던 대북정책의 원칙들을 철저히 지켰다면, 이런 논란 자체가 발생하기 힘든 것 아닌가? 김태효와 청와대가 천안함 침몰의 책임이 전적으로 북한에 있다고 진정 믿는다면, 국내 정치상황(2011년 시점에서 다음해 4월에 총선, 12월에 대선)과는 상관없이, 사과할 생각이 전혀 없는 북한과의 정상회담은 아예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하지만 이명박의 최측근 김태효는 어떻게든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비밀리에 북한과 계속 만났고, 겉으로는 대북정책의 원칙을 지키고 있는 양 큰소리쳤지만 실제로는 북한의 승락을 받아내기 위해 꼼수를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들이 세운 원칙도 안 지키는 MB정권,
친일이나 종북 문제보다 권력유지와 책임회피, 제식구 챙기기가 더 중요하다?
MB정권이 작년에 남북정상회담을 무리하게 추진한 이유는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국민의 여론을 호의적으로 만들어 집권 마지막해이자 중요한 선거가 있는 2012년에 청와대의 정치적 영향력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또한 정권의 각종 비리가 점점 더 많이 수면위로 떠오를 게 뻔한 상황에서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자신들의 실질적 또는 도의적 책임회피(남북관계 경색에 대한 책임추궁도 피할 수 있다)에도 상당히 도움이 될 테고, 선거를 앞둔 여당의 차별화 전략과 야당의 공세를 버티며 레임덕을 지연시키는 데에도 무척 유리한 위치를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남북정상회담은 여러모로 이명박 정권에 유용한 일인데, 문제는 지난 4년 동안 청와대가 대북강경론을 원칙으로 정해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는 나쁠 수밖에 없고, 여기에 더해서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사태가 벌어지기까지 했다(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일단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자신들이 세운 원칙대로라면 북측의 사과 없이는 당연히 정상회담도 어렵다. 하지만 권력유지와 책임회피를 위해 남북정상회담이 꼭 필요했던 MB정권은 이명박의 최측근 실세 참모이자 대북강경파인 김태효를 직접 보내면서까지 원칙을 저버렸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남북정상회담 추진은 실패했고, 이명박 대통령도 청와대내의 대북강경파를 강하게 질책했다고 한다]
이번에 큰 문제가 된 한일군사협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한 사람의 일반인으로서 이 협정 과정의 전모를 알 수는 없으나, 누구라도 쉽게 이해하기 힘든 어떤 내막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정황인 것 같다. 도대체 왜 MB정권은 비밀리에 억지로 한일군사협정을 체결하려고 했을까? 정부내에서도 밀실처리에 대한 거부감이 이미 표출됐었다는 보도를 볼 때, 우리가 모르는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런데 어제 한일군사협정의 전문이 입수되었고, 협정문 속의 독소조항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분석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아마도 더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게 될 텐데, 그렇다면 처리 과정뿐만 아니라 협정 자체에도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 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협정의 추진과정을 이명박의 최측근인 김태효 기획관이 총지휘했단다. 바로 남북비밀접촉 돈봉투 사건의 당사자가 말이다. 사실, 현정권 처음부터 청와대에서 대북강경정책을 주도한 그는 정치권 안팎에서 교체해야 한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잇따랐다고 한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오히려 그를 승진시켰고 4년이 넘는 기간동안 청와대의 외교안보정책을 주도하다가, 큰 논란을 야기시킨 한일군사협정 역시 총괄했단다. 과연 이보다 더한 종북, 친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런데 국무총리와 외교통상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사과한 지금 이 순간까지도 MB정권 실세 기획자가 책임을 진다는 소식은 보이지 않는다. 이쯤되면 이명박 정권에서 정말로 중요시하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깊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제발 유체이탈화법은 그만하고 좀 속 시원히 밝혀줄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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