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보궐선거 그리고 19대 총선과 18대 대선, 곽노현이 일으킨 변화.



용산참사 3주기였던 바로 어제 2012년 1월 19일, 2010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후보자 매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1심 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받고 풀려나 곧바로 교육감직에 복귀하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형두)의 판결에 대해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이 많고 그의 복귀에 관해서도 찬반이 나눠지는데, 그 동안 보여준 곽노현 교육감의 모습을 생각할 때 그가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물론 아직 2심과 대법원 선고가 남아있지만, 최소한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곽노현을 막을 수 있는 건 사실상 거의 없다. 누가 뭐래도 이제 서울시 교육감은 곽노현이고, 서울시장은 박원순이다.

이 두 사람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교육정책을 진보적으로 바꿔놓을 테고, 학교 폭력과 왕따, 아이들의 연이은 자살로 인해 정말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 분명히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와 관련해 서울시와 서울시 교육청의 불협화음도 곧 해결될 테고, 학생들의 무상급식 확대도 탄력을 받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하에서 직선제로 뽑힌 교육감과 시장이 아니었다면, 과연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시민들이 직접 뽑은 대표자들이기에 그 자체로 정당성과 권위를 갖고 중앙정부와는 다른 방향으로 서울의 정책을 펼 수도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박원순과 곽노현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얘기다.


[2012년 1월 19일, 수도 서울의 두 풍경: 시청사에서 직원과 닭싸움을 하는 박원순 시장 (좌: 뉴시스 보도),
석방된 후 김상곤 경기도교육감과 함께 기자들에 둘러싸인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우: 연합뉴스 보도)]


이건 비단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쨌든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고, 서울과 그 주변에 가장 많은 인구가 현재 살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의 변화보다 서울에서 일어난 변화가 더 큰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고, 국민들의 정치적인 학습효과 측면에서도 경험치의 효율이 가장 높은 곳이 바로 서울이다.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도 서울에 있고, 법을 만드는 국회도 서울에 있다. 서울에 모든 게 집중되어 있는 것에 대한 가치판단은 일단 차치하고, 서울이 지금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영향력 자체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래도 서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다른 지역의 사람들도 그에 따라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관련글 -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민들에게 꼭 보여줘야 하는 것 [클릭]


요즘 박원순 시장을 사람들이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가? 여러 가지 뉴스 보도와 포털사이트, SNS상의 다양한 의견을 지켜보면, 직선제를 통해 서울시장을 뽑은 이래로 이렇게 많은 응원을 받는 서울시장이 없었던 것 같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있으며, 시민들 대부분의 반응이 무척 긍정적이다. 원래 예정되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서울시장이 박원순으로 바뀌면서 퍽 희망적인 변화가 보였고, 그것이 국민들에게 '투표를 잘 하면 실생활에 반드시 좋은 변화가 온다'는 걸 확인시켜 준 것이다. 이건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을 코앞에 둔 현시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정치혐오와 무관심의 완화로 인한 투표율 상승은 선거의 당락에도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걸로 보인다.

[2012년 1월 19일 경향신문 보도]

상황이 이렇게 된 지금, 우리는 이 엄청난 변화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그 과정을 한 번 뒤돌아 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어떻게 이토록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던가? 솔직히 말해서, 2008년의 한미 쇠고기 협상과 관련한 촛불 시위 이후 한동안 우리 사회는 기운이 좀 빠져 있었던 게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뜨겁게 전국민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남녀노소 모두 촛불을 들었건만, 별로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진보나 보수 언론 모두를 포함해서 한국의 모든 이들이 평화롭고 자발적이며 흥겨운 촛불 시위에 대해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결과적으로 특별히 변한 건 없었다.

물론 이 때의 촛불 시위가 있었기에 지금의 이런 변화도 가능한 것이지만,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큰 전환이 있을 줄 몰랐던 사람들은 그다지 좋은 기분을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권 치하에서 국민 각자의 울분은 분명히 있었지만 한 데 모아져서 분출되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에 민주주의의 퇴행은 전방위적으로 무섭게 진행되고 말았다. 국제사회에서 발표되는 각종 지표에서 대한민국은 지난 10년 보다 훨씬 더 후진적인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었으며, 국내에서의 인권 탄압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지경이 이르렀고, 용산참사가 바로 2009년 1월의 사건이다.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용지(좌)와 2011년 8월 21일 파이낸셜뉴스 보도 사진(우)]

그런데,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서울시 학생들에 대한 무상급식 문제로 곽노현 교육감과 갈등을 빚고 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이 사안을 주민투표로 밀어붙인 것이다. 이 지점이 참 의미 있는 순간인데, 만약 이 때 서울시 교육감이 (대한민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강직한 성품의) 곽노현 교육감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과연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감히 짐작컨대, 잠깐 의견 충돌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대부분의 경우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했을 테고, 오세훈 전 시장이 무리수를 두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마 보수적인 교육감이었다면 이마저도 전혀 상관이 없었을 텐데, 사실 무상급식을 적극적으로 추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이런 상상 자체가 무의미하다. 아무튼 곽노현 교육감은 여러 가지 압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오세훈 전 시장은 결국 시장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실시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는 모두 아는 대로고, 곧이어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된다.

물론,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있었던 게 단지 곽노현의 힘만은 아니다. 어차피 21세기에 접어든 한국은 국내외의 다양한 지표들을 종합해볼 때 성장보다는 복지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도달했고, 이 거대한 물결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에 정부가 내놓은 보육정책을 봐도 그렇고, 선거를 앞둔 여야의 공약 역시 마찬가지이며, 위의 여론조사 결과도 이제 복지와 소통이 더 중심 화두라는 걸 보여준다. 또한 오세훈이 시장직을 내놓은 것이나 박원순이 시장에 출마한 건 어느 특정인의 힘이라기보다는, 촛불 시위와 용산참사, 노무현의 죽음 등을 겪으며 대한민국의 국민과 역사가 스스로 터득한 나름대로의 적응력이 빛을 발한 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이 중요한 시기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곽노현 교육감이 있었고, 그는 이런 시대정신을 실현시키는 데 너무나 적합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다. 곽노현은 시대의 요구에 답했고, 온갖 어려움에도 그 뜻을 굽히지 않고 핵심적인 역할을 해낸 것이다. 곽노현의 고집이 없었던들 갑자기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실시되지는 않았을 테고, 서울시장 보궐선거 역시 이뤄지지 않았으리라.


마침내 박원순이 서울시장으로 당선되었고, 그 과정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것은 바로 유력한 대권 후보로서 안철수가 부상한 일인데,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없었다면 안철수의 등장 자체가 미지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며, 지금처럼 박근혜 대세론이 무너지는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야권에 문재인과 같은 특별한 인물이 있기는 하지만 그가 벌써부터 이런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 듯하고, 안철수 같은 인물이 이렇게 높은 지지율로 정치권 전체에 큰 파장을 몰고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급기야 직접적인 위협을 느낀 한나라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고, 현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을 감지한 민주당은 그 압력을 받아들여 시민통합당,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합치면서 민주통합당을 출범시켰다. 그리고 진보주의자들의 실체적인 희망인 통합진보당(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새진보통합연대) 역시 탄생했으며,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과의 선거 연대도 앞두고 있다. 바야흐로 정치의 해인 2012년은 정치적인 대변혁의 해로 확고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직 총선과 대선의 결과가 어찌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여성 대표의 시대가 열린 사실만 봐도 올해 선거의 중요성이나 정치 변혁의 증거는 충분할 것 같다.

 
   여성 대표의 시대! 민주통합당의 한명숙과 박영선, 통합진보당의 심상정과 이정희


이렇게 변화는 본격화되었고, 올해가 끝날 때까지 큰 사건들은 계속될 것이다. 3년 전에는 용산참사로 새해를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여성대표들의 만남으로 새해를 시작한다. 앞서 말했듯 여성대표가 등장하기 직전에 한나라당의 비대위,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출범이 있었고, 그 이전에는 안철수의 등장과 박원순의 서울시장 당선이 있었다. 안철수와 박원순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통해 정치권에 들어왔고, 이것은 오세훈의 사퇴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오세훈이 사퇴한 이유는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문이며,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무리하게 추진된 데에는 곽노현 교육감의 존재가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곽노현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무상급식 문제로 (복지 확대를 반대하는 수구 세력과 이명박 정권을 등에 업은) 오세훈 전 시장에 맞서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은 지금과는 많이 다른 방향으로 일어났을 것이다.

물론 무상급식 문제가 전국민적인 관심사가 되며 주민투표로까지 이어진 것 자체는 오세훈 때문인 게 맞다. 하지만 아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때부터 끈질기게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무상급식을 오세훈 전 시장에게 관철시키려 노력한 곽노현이 없었다면, 오세훈이 자신의 시장직을 걸며 주민투표를 추진하는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곽노현을 뽑은 서울시민들이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으며, 박원순 서울시장을 뽑아서 현재 대부분의 서울시민들이 크게 만족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거를 잘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제대로 증명해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이렇게 올바른 투표를 한다면, 용산참사와 같은 비극은 다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잠깐만 상상해보자. 지금 서울시장이 박원순이 아니고 그대로 오세훈이었다면 어땠을지를.. 용산참사 3주기인 2012년 1월 19일은 전혀 다른 날이 되었을 것이다. 이 모든 변화는 곽노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니 부디,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도 서울시장 보궐선거처럼 현명하게 투표하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The Story of ART

Posted by Arthur Jung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징징이 2012.01.25 13: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세훈 서울시장이라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네요. 어서 4월이 되어 한표 행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꿔야지요....



티스토리 툴바